의 토지소유자와 경작자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실제 양전사목(量田事目)으로 채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병일의 ‘양전조례’에서는 “양전을 실시하기 전에 해당 ... 은 1720년대 숙종연간의 경자양전(庚子量田) 이후 중단된 상태로 소규모의 읍양전만이 있어왔다.1890년대의 조선사회는 안으로 중세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근대사회를 건설하는 과제와 밖 ... 모든 권리를 확정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양지아문은 내부(內部) ? 탁지부(度支部) ? 농상공부(農商工部)와 동등한 위치에 있으면서 밀접한 관련을 맺었으며, 양전조례(量田條例
)의 세입(歲入)·세출(歲出)의 뜻으로 쓰였다. 여기에 규정된 세입(歲入)·세출(歲出) 형식의 대원칙은 대동법(大同法)이 시행되면서 “경비(經費)는 대동사목(大同事目)을 참용(參 ... 식(戶口式)과 준호구식(準戶口式)으로 규정되어 있다.③ 토지측량- 양전(量田) :조세(租稅) 부과를 목적으로 전지(田地)의 넓이를 측량하는 것을 말한다. 양전의 방식은 조세법(租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