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양사는 연촌 최덕지와 그의 손자인 최충성을 배향하는 문중사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예조에서는 차후 조처하겠다는 답을 하였으나 사액을 내리지는 않았다. 1695년 존양사에 문곡 ... 문중이 자신들의 동족적 기반을 확대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겠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문중사우 건립과 더 나아가 이를 사액서원으로 성립시키는 과정 자체 ... 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가히 존경할 만한 賢人의 사우에 사액을 소청하였으나 이루지 못한즉 부단히 多士가 부끄럽습니다.(중략) 전하! 四臣의 德과 學問을 살피시어 특명으로써 表章
)를 제사 지내는 사묘(祠廟)를 합친 것으로서 단순히 글만 가르치는 서당이나 서재(書齋), 정사(精舍) 등과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우(社友), 향현사(鄕賢祠)와는 다르 ... )로 하여 귤림서원이라 현액하였다. 현종 10년(1669)에는 김상헌(金尙憲)과 정온(鄭蘊)을 배향하고, 숙종 8년(1682)에 송인수(宋麟壽)를 배향 사신서원(四臣書院)으로 사액 ... 되어 서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숙종 21년(1695)에는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함으로써 오현배향(五賢配享)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귤림서원의 체제는 원장 외에 장의 1명, .
충북지방의 서원(書院)과 사우(祠宇)서원이란서원의 명칭은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궁중에 있던 서적(書籍)의 편수처(編修處)이던 여 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 ... 서원이 생겼으며, 특히 주자(朱子)가 강론(講論)을하던 백록동서원은 유명하였다.이후 서원은 선현(先賢)과 향현(鄕賢)을 제향(祭享)하는 사우(祠宇)와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재(書齋 ... (順興) 백운동(白雲洞)에 고려 유교(儒敎)의 중흥자(中興者) 안향(安珦)의 구가(舊家)가 있음을 알고 거기에 사우(祠宇)를 세워 제사를 지내고 경적(經籍)을 구입하여 유생들을 모아
」창건돼 효종 원년(1650년)에 사액됐다. 숙종39년(1713년) 선생의 후학인 사계 김장생(1548∼1631)과 현석 박세채(1632∼1695) 두 분을 추향했으나, 고종5년 ... 과 1976년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 건물은 팔작지붕에 6간의 사우(祠 宇)와 신문(神門)·동서 협문 등이 있으며, 율곡의 위패를 주벽(主壁)으로하여 좌우에 김장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