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누님 증정부인 박씨 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박지원朴趾源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 여 섯에 덕수德水 ...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 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 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 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은 아곡鵝谷이라 하는데, 장차 그곳 서향 ... 려고 상여와 함께 떠나가니, 내가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가운데서 이를 전송하고 통곡하며 돌아왔다.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
한 성격이 강화되었다. 그런데 박지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고정된 격식을 요구하는 묘지명에서까지 이러한 성향을 확대하고 있다.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 孺人十六歸德水李 ... , 忽忽如夢中. 爲兄弟之日, 又何其促也.去者丁寧留後期, 猶令送者淚沾衣. 扁舟從此何時返, 送者徒然岸上歸.이 묘지명은 연암이 여덟 살 연상인 손위 누이의 별세에 즈음하여 지은 글로, 외 ... 적 형태나 구성 그리고 표현 수단 등 형식적인 면이나 제재나 인물 등 내용 면에서 예술적으로 독특하고 특출한, 여타 묘지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작품이다.묘지명은 객관적인
명이다. 묘지명이라는 문체는 본래 전통적이 형식이 있으며 한 사람의 성품과 행적, 장례, 후손, 장지를 서술하고 운문으로 서의 내용을 개괄한다.그래서 형식을 잘 지킨 묘지명은 상투 ... 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박지원의 작품은 달랐다. 먼저 형식적으로도 전통적인 묘지명을 따르지 않으며, 여기에 자신이 누이와 겪었던 일을 넣으면서 오히려 독자를 감동을 주 ... 명은 새겨야 하므로 보통 운문이다. 묘지명이라는 문체는 격식이 있고, 규범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경직된 모습을 보이기 쉬우나 이 작품은 전혀 운문을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 매우 쉽
숨어있기 때문이요, 여울이 있다 해도 만리 밖에 있는 셈이라 그렇게 이름지었던 것이다.1771년(35세)큰누님 박씨가 43세로 돌아가셨다. 누님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백자증정부인 ... 박씨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을 썼다. 이덕무, 백동수 등과 송도, 평양을 거쳐 천마산, 묘향산, 속리산, 가야산, 단양 등 명승지를 두루 유람했고, 황해도 금천 연암골을 보 ... 었다. 형수의 유해를 연암으로 옮기고 ‘백수공인이씨묘지명伯嫂恭人李氏墓誌銘’을 썼다.유언호의 도움으로 개성 금학동에 있는 양호맹의 별장에 머물면서 이행작, 이현겸, 양상회, 한석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