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통해 수립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광복 후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론을 토지조사사업 부문에서 재정립하려 시도한 것은 일본의 미야지마히로시(宮嶋博史)였다. 그는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 ... %를 조선총독부 소유지로 약탈했는데, 이 속에는 방대한 규모의 일반 국민의 사유지인 농경지와 未墾地) , 임야가 포함되어 있다. 미야지마 등은 ‘토지대장’에 대한 실증연구를 통해
라고 료를 이용한 배영순(1986)과 조석곤(1986)의 실증 연구, 미야지마히로시(宮嶋博史)(1991), 이영훈의 연구(1993) 등- 이 새로운 연구들은 세부 내용에 있어서 차이 ... 궁원(宮院)과 관청의 토지, 소유권이 애매한 부락의 공유지도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국유지로 되었다.④ 국유지로 된 토지는 동척(東拓)이나 일본인 농장의 토지로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