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이기설(理氣說)로 이이(李珥)보다는 이황(李滉)에 가까웠으며, 호론(湖論)을 지지하였다. 숙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양주(楊州)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영암(靈巖)의 녹동서원 ... (鹿洞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특히 영조 때 저술된 이 김창협 (金昌協) 의 '동유기 (東遊記)' 는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글이었고, 이전의 기행문과는 다르게 시구들이 절로
)으로 살다가 1642년(인조 20) 72세로 세상을 마쳐 팔조령(八鳥嶺) 삼정산 (三頂山) 기슭에 묻혔으며, 가창골에 세워진 녹동서원(鹿洞書院)에 배향되었다.그는 슬하에 아들 5형제 ... 씨(歸化姓氏)가운데 괴산 점씨(槐山占氏)와 함께 일본(日本)에서 계출(系出)된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수로왕(首露王)계통의 김해김씨와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우록 김씨(友鹿金氏 ... (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그는 서른살이 되던 해 진주목사 장춘점(張春點)의 딸을 아내로 맞아 경북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友鹿洞)에 뿌리를 내리고 충효의열(忠孝義烈)의 가풍(家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