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목재(牧齋)로서 강남 상숙(江南 常熟, 지금의 강소) 사람이다. 명나라 때 벼슬을 지내다가 명이 청나라에 망하자 투항하여 예부시랑을 지내다 오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 ... 적 시선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시정(詩情)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도학자적인 색채가 농후하다는 비판을 받는다.원매(袁枚, 1716-1797)의 성령설(性靈說)자는 자재(子才)이고 ... 호는 간재(簡齋)로서 절강(浙江) 전당(錢塘) 사람이다. 그는 심덕잠의 격조설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공안파의 낭만주의 이론을 계승하였으나 훨씬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이었으며 선인
庵), 회암통수(晦庵通 ), 백록동주(白鹿洞主), 다선(茶仙), 목재(牧齋), 인지당주(仁智堂主), 둔웅(遯翁), 운학노인(雲壑老人), 창주병수(滄洲病 ) 등이라고 했다.그는 건염 ... )가 되었으나, 임기를 마친 뒤 의재(義齋) 정안도(鄭安道)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정의재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가 된 사람인데 그와 친분이 있어 그의 별장을 빌려서 살 ... (建炎) 4년(庚戌, 1130) 3월 15일 오시(午時)에 복건(福建) 남검주(南劍州, 지금의 南平) 우계현(尤溪縣)의 의재 정안도(義齋 鄭安道)의 별장에서 태어났다.건염 4년
는 성격의 작가이다.▶전겸익(錢謙益)- 자가 수지(受之), 호가 목재(牧齋), 강소(江蘇) 상숙(常熟) 사람이다.그는 박학 다재하며 시문에 뛰어났고, 오위업과는 달리 송시를 높이 떠받들 ... 청대의 시청대는 중국 고전 시가를 직접적으로 계승하여 발전한 시대로, 시인이 원·명 때보다 훨씬 많고 작품의 창작도 풍부하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인이 6천여명이 넘었고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