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주로 ‘조선인’으로 불렀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인 호칭으로 ‘조선인’의 약어인 ‘鮮人(senjin)’ 으로 부르기도 했다. 해방 후에도 일본사회에서의 조선인 차별은 여전히 존재 ... 재일 교포들의 일본 사회 정착이 두드러지면서 재일 코리안 사회나 일본 언론계에서는 "在日韓國 ? 朝鮮人" 이라는 호칭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은 현재 분단된 한반도
15일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연맹(在日本朝鮮人聯盟:약칭 조련)이었다. 조련은 200만명이나 있었던 재일동포의 귀국사업과 생활돕기, 조선어 강습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주도권이 공산 ... 여 1945년에 재일조선인연맹(在日朝鮮人聯盟:조련) 중앙준비위원회 를 설립하였다. 한국인 단체의 단일화를 원하는 점령군 사령부의 후원을 받은 조득성이 위원장을 맡고, 일본정부와 끈이 닿 ... 한다. 그리고 조국통일전선실행위원회 를 거쳐 1951년 조총련의 기반이 된 조선민주전선(在日朝鮮民主戰線:약칭 民戰) 을 결성하였고, 1955년 5월25일 민전을 해체하고 한덕수
를 발간하고, 식민지 조선 각지에 순회 강연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 朴慶植, 在日朝鮮人運動史 - 8.15解放前 , 三一書房, 1979년, 106 - 107면.그러나 이들 단체는 자신 ... 의 조선인 단체에 보냈다.{ ) 在京朝鮮人狀況 (朴慶植編,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 1, 三一書房, 1975년, 148 - 149면 수록).또한 4월 20일에는 김종범을 국내에 파견하여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