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상촌 신흠
- 최초 등록일
- 2007.01.25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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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작가론으로서 상촌 신흠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보고서.
목차
Ⅰ. 들어가면서...
Ⅱ. 신흠의 생애와 시조작품 감상.
1)신흠의 생애과 학문
2) 상촌 신흠의 시조
Ⅲ. 마치면서...
본문내용
Ⅰ. 들어가면서...
상촌(象村) 신흠은 1566년(명종 21)에 태어나 1628년(인조6) 삶을 마치기까지 고위관료로서는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당대의 대표적인 문인으로서는 수많은 문장과 한시를 창작하였다. 월사(月沙) 이정구, 계곡(繼谷) 장유, 택당(澤當) 이식 등과 함께 월상계택(月像繼澤)으로 일컫어지며 일세를 풍미했고, 이들은 후에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로 불려지면서 후대 문인들의 추앙을 받아 왔다. 그 중에서도 신흠은 한시말고도 30여수에 이르는 적지 않은 수의 시조를 남겨 놓고 있어 국문학, 특히 시가 분야에서는 비교적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활발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연구성과도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는 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리학의 관념적 틀에 얽매이지 않는 드물게 다양한 사상적 편력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주목되고 있다. 연구성과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간간히 언급하고 있는 앞선 논의의 성과로 비추어볼 때 신흠은 <易經>에 대한 상수학적(象數學的) 이해, 양명학과 도불에 대한 적지 않는 관심 등을 간취해낼 수 있어 당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인사들의 사상적 입장이나 보편적인 학문활동과는 다소간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이다. 미미하나마 현실의 실제적 관심을 학문의 자장 안에 끌어들이고자 했던 노력을 보여주었던 인물이 신흠인 것이다.
그러나 신흠이 살았던 당시는 그의 화려한 관료적 경력과 다양한 창작, 그리고 활발한 저술활동과는 어울리지 않게 내우외환이 줄을 이었던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큰 전란이 그의 생애 중에 일어났으며, 계축옥사와 인조반정, 정여립의 난과 이괄의 난 등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들이 거듭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한 사건들의 고비고비에서 신흠은 정치권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지니게도 되었다 그 결과 중년의 고비에 이르른 10여 년의 세월 동안 유배생활을 겪기도 했지만, 그러나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넘기고 결국 영의정의 자리에서 그의 생을 마감하고 있다.
참고 자료
全在康, 『象村申欽文學硏究』(형설출판사, 1997)
<行狀>, 『국역 상촌집 6』
<題壁>, 『국역 상촌집 3』
<彙言>, 『국역 상촌집 6』
朴熙秉, “申欽의 學文과 그 思想史的 位置”, 『象村 申欽의 文學世界』
禹應順, “申欽 詩의 一 局面”, 『象村 申欽의 文學世界』
정병욱 편, 「時調文學大事典」, 신구문화사, 1982
윤영옥, 『시조의 이해』,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5
김용재, 『신흠의 생애와 문학』, 대전동구문화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