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주거환경]청계천 다녀와서-다시 눈뜬 청계천
- 최초 등록일
- 2006.06.0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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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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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실 청계천을 이번 레포트 때문에 간 것은 아니였다.
서울에 신체검사를 받으로 가면서 동대문에 옷 구입할겸 청계천을 들렸었다.
내가 워낙 수동카메라에 빠져있는 사진 쟁이 라,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 였다.
처음가서 놀란건 복원이 아니라 리모델링이여서 깜짝 놀랐고 청계천을 보려는 인파를 보고 한번 더 놀랬다.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물길 다시 열렸단 소리에 매스콤은 항상 시끌버쩍이였기에 나는 기대를 많이하고 갔는데도 불과하고 그 기대를 역시 저버리지 않았다 어둠에 묻혀있던 청계천이 복원사업을 통해 이름 그대로 맑은 하천으로 살아나 밝은 햇살아래 모습을 드러낸 것을 생각하니 정말 뿌듯하였다.
청계천에 낙수에 하얀 물거품이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시게 비쳐 이런 나를 환영하는거 같아 기분이 묘 하였다.
바지를 걷고 청계천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여서 지금 까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청계천을 바라볼때 단순히 물길이 열렸다고 생각하면 않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문화생활은 물론이고, 주변지역 부동산도 생기가 돈다고 들었다.
잠깐 청계천의 백과사전적 의미를 알아봤는데,
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고 한다. 조선 왕조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하였는데, 제3대 왕 태종이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후 영조 때에는 준설·양안석축(兩岸石築)·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공사로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하였다. 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는데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水標橋)·오간수교(五間水橋)·광교(廣橋)·영미교(永尾橋)·관수교(觀水橋)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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