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화] 중세 유럽을 강타한 인류사의 치욕! 『 마녀사냥 』
- 최초 등록일
- 2005.05.17
- 최종 저작일
- 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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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단자 운동이 격화되는 11, 12세기 무렵에는 이단자를 재판하는 교회 법정에 ‘마녀’의 모습이 어른거르기 시작한다. 재판받는 이단자의 죄상 중에 마녀적인 행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마교황으로부터 파견된 이단퇴치의 열의에 불타고 있던 이단심문관들은 활동범위를 마녀에까지 확대시켜나간다. 이 기세에 더욱 박차를 가하듯 교황 요하네스22세는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마녀재판을 개시하고 계속하고 판결하는 충분하고 완전한 권능을 당신들 각자에게 부여하는 것이다’라는 해금령를 발표한다. 이에 이단심문관의 마녀사냥을 갑자기 늘어났다. 이 시대는 말하자면 ‘교황의 바빌론 죄수’시대로 교황의 권력은 국왕의 권력에 눌려 교황청은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져 프랑스왕의 지배하에 있고 로마교황을 주권자로 하는 카톨릭적 세계정부가 곧 붕괴될 듯한 위기상황의 시대였다. 카톨릭 교회의 이 위기상황은 극복되지 않고 점점 혼란의 도를 더해 결국은 종교개혁 운동과 연결되어 ‘종교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서유럽 전체를 황폐화 시킨 사회적인 대동란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요하네스의 해금령에서 힘을 얻은 마녀사냥을 이 사회적 동란과 보조를 맞춰 1600년 절정기를 향한다. 마녀에 관한 판결문을 보면 마녀는 마왕의 명령에 따를 것을 맹세하고 마술과 주문을 가지고 사람과 가축에게 위해를 가마고 많은 신생아를 살해하거나 혹은 악마의 도움을 빌어 젖부족, 병약, 심한 질환 등으로 인류를 고생시켰다고 한다. 또한 마녀는 독약을 만들어 그것을 이용하여 악질 유행과 같은 사회적 재앙을 초래하고 마녀와 악마와의 결탁을 위하여 ‘마녀집회’를 열어 악마예배와 같은 행사를 하기도 한다. 피로써 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악마를 신으로서 신하로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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