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미술교섭의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는 미술교섭의 원인과 전파력
- 최초 등록일
- 2023.01.30
- 최종 저작일
-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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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녕하세요. 오리양입니다.
역사학과 졸업생으로 예술학과 복수전공했습니다.
역사 및 예술 관련 레포트가 대부분입니다.
레포트 작성시, 퀼리티 높은 내용과 분량
그리고 참고문헌 표기에 공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차
Ⅰ. 동서양과 동아시아의 미술교섭
1. 중국의 미술교섭
1) 도자 교역으로 인한 동서양 미술교섭
2) 18세기 서양미술의 시누아즈리
3) 청대의 미술교섭
2. 일본의 미술교섭
1)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서양화 유입
2) 에도시대의 미술교섭
3) 일본 근대기의 미술교섭
3. 조선과 서양의 미술교섭
4. 동아시아의 인상주의
1) 일본의 인상주의
2) 한국의 인상주의 유입
3) 중국의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영향
Ⅱ. 미술교섭의 원인과 전파력
본문내용
Ⅰ. 동서양과 동아시아의 미술교섭
1. 중국과 미술교섭
이전부터 유럽인들에게 중국은 위대하고 신비로운 곳이었다. 서양은 실크로드(Silk Road)를 통해 유입되는 중국의 진귀한 문물, 예를 들면 도자기와 비단, 차 등을 찬탄하기에 바빴다. 특히 중국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 추정, 이탈리아인)의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 아랍인)의 『여행기』 등의 관련 기록들은 그들의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17세기에 들어서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유럽과 중국 사이 문화교류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였다. 그들이 중국에 소개한 그림이나 인쇄물, 서적들은 중국 그림에 유럽의 영향을 최초로 전달한 매개체가 되었으며, 동시에 그들이 중국 미술에 대하여 기록한 상세한 글들은 유럽 사회에 전해졌다. 마이클 설리번, 이송란 외 3인 역, 『동서미술교섭사』, 미진사, 2013, 52~53쪽.
1) 도자 교역으로 인한 동서양 미술교섭
유럽인들은 특히 중국의 도자를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중국 도자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도자와 품질로나 미적이나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국적인 정취의 신비감을 지닌 값비싼 고가품이었다. 따라서 유럽의 상류층이라면 누구나 중국 자기를 소유하고 싶어 하였으며, 심지어 궁전과 저택 또는 방을 꾸미는 장식품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이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쉔브룬 궁전(Palace and Gardens of Schönbrunn)의“중국적인 방(Chinese ro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8세기 에겐 베르크 궁전(Eggenberg Palace)은 “도자기 방(Porcelain room)”을 두어 중국 도자로 방 전체를 꾸미고 전시하였을뿐더러 “중국적인 방”외에도 낙중낙외도(洛中洛外図) 걸려있는 “일본적인 방(Japanese room)”을 두기도 하였다. 이처럼 중국 도자로 방을 장식한 모습이나 유럽인들이 사용하는 모습은 당시 서양 회화에 나타났다.
참고 자료
마이클 설리번, 이송란 외 3인 역, 『동서미술교섭사』, 미진사, 2013.
김형종 외 5인, 『세계사』, 금성출판사, 2014.
한정희, 『동아시아 회화 교류사』, 사회평론,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