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대 한국 근현대사의 이해 - 역사 인물 레포트 현채
- 최초 등록일
- 2021.09.03
- 최종 저작일
- 20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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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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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현채의 생애
2. 근대적 역사교과서의 시초 동국사략?
3. 역사교육자로서의 현채
4. 참고문헌
본문내용
현채는 1865년(철종 7년), 조선시대 역관가문인 천녕 현씨 집안에서 태어나 18세인 1873년 18세의 나이로 역과(驛科)의 한학(漢學)에 급제한 후 별다른 직책 없이 일본어 공부에 몰두하다 1892년 부산항 감리서의 역학으로 발탁되어 서기관까지 진급했다. 이 시기 그는 개항의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일본인들과 접촉하며 일본의 학문을 공부했다. 이후 갑오개혁기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주사에 임명되었고 1895년 5월에는 관립외국어학교 부교관과 한성사범학교의 부교관을 지냈고 한성의 묘동(廟洞)에 을미의숙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다 1899년 학부편집국 위원으로 임명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인 역·저술활동에 나서 1899년 학부에서 발간한 『동국역사』라는 소학교용 국사교재의 편찬을 담당했다. 이듬해에는 장지연과 함께 ‘시사총보사’를 광문사로 개칭하고 고서출판사업에 나서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등을 간행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할 때 그가 재직하고 있던 학부의 분위기에 대해서 당시 언론에서는 “일본인 학정참여관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의 지휘하에 굴복하여 한마디도 항의하지 못하는 분위기였고, 한국의 무궁한 참화가 실은 학부에 원인이 있다.”고 비판하였다(「신론교과서」, 『대한매일신보』 1906년 3월 29일자).
참고 자료
『역사교육의 이론』, 김한종·이영효, 책과함께, 2009.09.14.
『한국사 특강』,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09.10.
한국 근대 역사학의 창출과 통사 체계의 확립, 도면회, 한국역사연구회, 「역사와현실」 제 70호, 2008.12
‘통일신라’의 발명과 근대역사학의 성립, 윤선태,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신라문화」 제 29집, 2007.02
대한제국기 역사교과서 편찬과 근대역사학-동국사략(현채)의 당대사 서술을 통한 국민만들기를 중심으로, 이신철,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 제 126호, 2013.6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fr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