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원의 대표작인 규원가를 현대역하고 기, 승, 전, 결의 작품분석
- 최초 등록일
- 2020.12.20
- 최종 저작일
-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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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먼저 허난설헌은 누구인지부터 시작 합니다. 그리고 대표작인 규원가를 현대역으로 번역하고, 이 작품의 기, 승, 전, 결을 분석하였습니다. 규원가에 대한 생각도 포함하여 마무리하였습니다.
목차
I. 허난설헌은 누구인가?
II. 규원가의 현대역과 작품분석
III. 작가 · 작품 선택의 이유와 규원가에 대한 나의 생각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I. 허난설헌은 누구인가?
1. 허난설헌의 생애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본명은 초희(楚姬)이며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이다. 1563(명종 18)년에 강릉 초당 생가에서 초당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봉(篈)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임. 천재적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으로 칭송되었다. 이달(李達)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다.
에게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한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 길 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은 누구든지 쉽게 만지고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기생을 의미함.
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고부간에 불화하여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으며,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동생 균마저 귀양 가는 등 비극의 연속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墨)으로 고뇌를 달랬다. 23세(1585, 선조17)에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는 시 「몽유광상산」을 지었고, 1589(선조21)년 27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2. 허난설헌의 문학 세계와 작품
1) 문학세계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시작으로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을 노래하였으며, 애상적 시풍의 세계를 이룩하였다. 시 대부분은 원망과 한탄을 주로 노래했지만, 풍부한 시어와 언어 구사력은 높이 평가 된다.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잇단 가정의 참화로, 시의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을 품고 살면서도 현실을 벗어난 신선세계에 대해 노래를 하였던 것이다. 허난설헌의 시에는 슬픔공감어가 192회에나 사용되고, 패물이 316회, 기타 자연물에서는 구름이 46회, 새가 98회로 비상하고픈 심정이나 여성적 미의 추구, 한의 정서 등이 특별히 시어에서 나타난다.
참고 자료
이화형, 「규원가(閨怨歌)에 나타난 여성의 존재인식」, 116호, 국어국문학회, 1996.5, 305-318 (14 pages)
[네이버 지식백과] 허난설헌 [許蘭雪軒]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네이버 지식백과] 허난설헌 [許蘭雪軒] (한국여성문인사전, 2006. 11. 28., 태학사)
[네이버 지식백과] 허난설헌 [許蘭雪軒]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