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붕당정치의 모든것
- 최초 등록일
- 2019.11.16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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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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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붕당정치의 성립
1) 붕당의 출현
2) 붕당정치의 성립
2. 붕당정치의 전개
1) 효종~현종 대의 정치상황
2) 예송논쟁
3) 1차 예송
4) 2차 예송
본문내용
붕당의 출현
훈척세력과의 정치적 투쟁을 통하여 성장해 온 사림세력은 선조 초반에 이르러 마침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사림정치를 비로소 현실의 정치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였다.
흔히 선조의 즉위로 사림이 집권했다고 여겨지는데, 사림으로 통칭되는 선조초의 집권세력 내부에는 애초부터 벼슬한 시기에 따른 권신체제와의 관련문제나 학문적 성향의 차이로 인해 정치적 입장과 노선을 달리하는 여러 부류가 있었다. 그 부류는 크게 보아 중종 때 등과하여 선조초의 시점에서는 고위직을 차지했으나 이미 구세대가 되어버린 부류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진이라 할 수 있는 세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세력 간의 갈등을 드러나게 한 사건으로는 낭천제 시재(재주가 있고 없음을 시험함)를 통하지 않고 이조전랑의 천거를 통해 재주와 행실이 좋은 사류(선비의 무리)를 관직에 등용하려는 제도
문제가 있었다. 낭천제는 신진 사류에 속했던 이조전랑과 좌랑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이는 윤원형 등 권신집권 이래의 큰 폐단이었던 구신들의 청탁에 의한 인사를 배재함으로써 관료사회의 새로운 기풍을 조성한다는 의도가 잠재되어 있었다. 낭천제(郎瀳制)는 몇 차례의 폐지와 설치를 반복하고, 점차 신진세력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정착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구신과 신진사류 사이의 대립은 구신계 대신들이 신진세력을 공격하기도 한다. 신·구세력간의 갈등은 문소전(文昭殿) 태조와 금상의 사대조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말함
논의에서 재발하였다. 이 논의는 해를 넘기지 못한 임금이므로 정통의 계승자가 될 수 없다고 하여 권신들에 의해 문소전에 모셔지지 못한 인종의 신주를 문소전으로 옮기자는 논의였는데 , 그 배열에 대해 과거를 따를 것인가, 새롭게 할 것인가에 구신과 신진세력 사이에 의견대립이 있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편집부 , 『한국사 30』, 국사편찬위원회 ,1998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아름다운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