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령왕릉 석수를 통해 본 백제 미학
- 최초 등록일
- 2019.01.07
- 최종 저작일
-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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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진묘수
2.무령왕릉 석수
3.맺음
본문내용
진묘수가 등장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 초나라부터이며, 진대에는 진묘수 부장 습속이 유행하지 않다가 후한 중만기에야 진묘수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진묘수라 부를 수 있는 동물상이 본격적으로 출현한 때는 후한대부터이며, 지역마다 형태에는 차이가 있다. 서진대에 들어서는 동물 형상의 진묘수와 무사 형상의 진묘용을 부장하는 풍조가 현저해 진다. 진묘수는 대개 소와 같은 네 발 짐승으로, 등에는 갈기가 뻗었고, 머리를 숙여 뿔로 들이받는 형태가 많은데, 3개의 뿔을 가진 진묘수와 독각계(獨角系) 진묘수도 보인다. 동진대에는 종류도 적고 조형도 단순화하며, 남경 일대에서 물소 모양의 진묘수가 발견된 정도이다. 남북조시기 북위에서는 효문제 이후 묘장 내에 俑(용)을 부장하는 풍습이 생겨 동물 형상 진묘수와 인물 모양 진묘용이 한 쌍씩 나오는데, 동물 형상 진묘수는 머리를 들고 꿇어앉은 자세를 취하고, 얼굴은 호랑이에서 사자로 변화하며, 앞 다리에는 화염문의 날개가있고, 등뼈 부분에는 갈기가 솟아있다. 남조는 북조에 비해 무덤에 부장되는 俑이 적으며 동진의 도용이 그대로 이어진다. 수당대에는 후장의 풍습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종류와 많은 양이 출현한다. 따라서 진묘수는 후한대부터 ‘뿔과 날개’를 지닌 상상의 동물로 정형화되어 당대까지 계속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뿔과 날개를 지닌 상상의 동물은 귀신을 진정시키고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며, 사자의 영혼을 보호하는 특이한 신수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뿔 중에서도 하나만 솟아있는 뿔은 초능력의 상징이었다. 후한의 석제 진묘수인데 엎드린 호랑이 형상이다. 신체가 간략하게 표현되었지만, 눈이 돌출되고 코가 높고 입을 벌리고 이빨과 혀가표현되었다. 한 대에는 호랑이가 사귀(邪鬼)를 쫓아낸다고 하여 호형 진묘수가 많이출토된다. 『산해경』에 온갖 귀신이 출입하는 귀문이라는 곳에 신이 있는데 나쁜해릴 끼치는 귀신이 있으면 갈대 줄로 묶어서 호랑이에게 먹인다고 전한다. 이러한 전래에 의해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호랑이를 벽사신앙의 존재로 인식해왔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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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