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십자군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15.01.20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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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차 십자군에 대한 고찰입니다.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견지해서 레포트를 써 보았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를 통해 바라본 그의 특징
3. 프리드리히 2세와 교황과의 대립
4. 프리드리히 2세의 십자군
5. 결론
본문내용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 의해 십자군이 선언된 이후, 대략 200여년동안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위한 원정은 계속되었다. 1차 십자군은 성지를 탈환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냈다. 그러나 십자군은 성지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살라딘에 의해 예루살렘을 빼앗기게 된다. 다시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수차례 원정이 계속되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유럽의 기독교 세력이 다시 성지를 수복한 것은 6차 십자군에 이르러서였다. 6차 십자군은 결과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재탈환하며 성공을 한 듯 싶으나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첫 번째는, 교황에게 파문을 당한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주축이 되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프리드리히가 이슬람과의 협상을 통해 예루살렘을 제한적으로 받아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획득하긴 하였으나, 이슬람 교도들의 성역을 보장해 주어야했고, 방어를 위한 성채를 비워두어야 했다. 협상의 사실을 알게 된 기독교도들은 분노하였고, 6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음에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사실 협상 자체의 내용에 대해선 많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6차 십자군에 대한 평가가 나쁜 것은 십자군의 주체가 되었던 프리드리히 2세 때문일 것이다. 6차 십자군은 이전의 십자군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전에는 왕과 귀족을 비롯하여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하며 이들 십자군의 동기나 특성을 파악하기 매우 힘든 측면을 보인다. 그러나 6차 십자군은 프리드리히의 십자군이라 일컬을만큼 그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다른 십자군 세력들은 파문을 당한 황제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그런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이슬람과의 외교와 협상을 통해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처럼 6차 십자군에서는 프리드리히 2세가 매우 중요한 주체로 등장한다. 따라서 6차 십자군의 동기나 특성들을 올바르게 분석해보기 위해선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본 글에서는 6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프리드리히 2세를 분석함으로서, 프리드리히 십자군의 특성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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