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정부(제3공화국, 박정희정권)의 독재, 박정희정부(제3공화국,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 박정희정부(제3공화국,박정희정권)의 대북정책, 박정희정부(제3공화국)의 군인특별채용제도
- 최초 등록일
- 2013.04.15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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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박정희정부(제3공화국, 박정희정권)의 출범
Ⅲ. 박정희정부(제3공화국, 박정희정권)의 독재
Ⅳ. 박정희정부(제3공화국, 박정희정권)의 경제관과 통일관
Ⅴ. 박정희정부(제3공화국,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
Ⅵ. 박정희정부(제3공화국, 박정희정권)의 대북정책
Ⅶ. 박정희정부(제3공화국, 박정희정권)의 교육정책
Ⅷ. 박정희정부(제3공화국, 박정희정권)의 군인특별채용제도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남북한이 선택했던 두 개의 발전 전략은 공통의 조건속의 상이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공통의 조건으로 한반도의 냉전 환경을 들 수 있다. 대외적으로 남북한의 산업화는 냉전적 동북아 질서의 바탕위에서 이루어졌다. 남한의 수출주도형 발전전략의 배경에는 한미일 남방삼각체제의 분업 구조가 있다. 냉전 상황에서 남한은 ‘반공의 보루’로 충실한 역할을 했다. 이에 비해 북한의 자력갱생 모델은 북중소 북방삼각체제의 불안정한 환경에서 형성되었다. 1950년대 후반 북한의 자립적 발전 전략은 중소분쟁이라는 사회주의권의 분열속에서 강요된 것이었다. 국내적으로도 분단과 냉전 질서는 남북한에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와 전체주의적 가치관, 권위주의적 문화를 확산시켰다. 북한의 노동 동원과정에서 이른바 동원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소극분자들을 ‘적과의 내통자’로 비판한 것이나, 박정희 시대 노동운동에 대한 ‘빨갱이’ 딱지 붙이기는 노동집약 산업화 과정에서 냉전의 논리가 노동력 동원에서 활용된 공통의 경험이었다.
<중 략>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가 끝나자 김계원 비서실장은 박승규를 따로 불렀다. 박 수석은 이렇게 보고했다.
“부산지역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단 병력이 시민들을 때려 민심이 반정부적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내일 각하에게 그 사실을 보고할 때 김재규 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불화에 대해서도 보고하시오. 특히 차실장의 월권적 행동에 대해서 보고하시오.".
김 실장은 그 전에도 한번 대통령에게 "차 실장이 정치에서 손을 떼도록 하셔야 되겠습니다"라고 건의한 적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차실장이 국회의원을 했기 때문에 정치를 잘 알아"라고 했다. 김 실장은 비슷한 건의를 다시 하기가 뭣해서 박 수석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이었다.
김 실장은 박 수석의 그런 보고 후 대통령을 만나 김 부장과 차 실장의 암투가 심하니 차라리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꾸어 주자는 건의를 할 예정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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