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소비에트연방,소련)의 역사, 러시아(소비에트연방,소련)의 스탈린주의, 러시아(소비에트연방,소련)의 멘셰비키,볼셰비키, 러시아(소비에트연방,소련)의 한반도신탁통치반대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3.04.15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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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러시아(소비에트연방, 소련)의 역사
Ⅲ. 러시아(소비에트연방, 소련)의 절대주의
Ⅳ. 러시아(소비에트연방, 소련)의 스탈린주의
Ⅴ. 러시아(소비에트연방, 소련)의 정치시스템
1. 소비에트 시스템의 개념 재정립
2. 전체주의와 이익집단 모델
3. 계급모델
4. 관료주의 모델
Ⅵ. 러시아(소비에트연방, 소련)의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멘셰비끼와 볼셰비끼)
Ⅶ. 러시아(소비에트연방, 소련)의 문학과 예술
Ⅷ. 러시아(소비에트연방, 소련)의 한반도신탁통치반대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흐루시쵸프가 1964년 10월 퇴임한 후 등장한 브레즈네프는 냉전에서 긴장완화에 과정을 추진하여 평화공존을 보다 굳게 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방측과의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럽에서 소련은 서독의 보복전쟁과 핵무장의 저지를 제1의 과제로 하였다. 이를 위해 소련과 서독과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들의 유지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1956년의 헝가리사건,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사건은 국제여론의 비난을 무시하고 무력행사의 전례를 만들어 놓았다. 서독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하여, 중공에의 핵무기의 제공도 중지하고 그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1969년 10월 서독의 브란트내각이 성립되고 유럽의 현상을 승인하고 무력으로 그의 변경을 도모하지 않는 것을 소련과 약속하였다.1970년 8월 독·소 조약이 조인되고 1972년 발효하였다. 소련은 25년간 요구해온 전후의 유럽의 현상유지를 서독에게 인정시킨 것이다.
<중 략>
공산주의는 처음에 자본주의에 내재된 대중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겠다는 웅대한 계획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은 문제점들이 구태의연하거나 새로이 발생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을 놓고 볼 때, 발전에 관한 ‘체제의 효율성’과 ‘균형의 요구’사이에 내재된 본원적 모순은 바로 사회주의 모델이 갖는 자가당착적 핵심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소연방의 장래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화국간 경제공동체 조약체결과 집단안보조약의 체결을 위한 논의, 그리고 각 공화국간 경제적 상호보완관계 및 다민족성 등을 고려하여 상당히 유사한 그림은 그려볼 수 있다. 신연방형태는 대체로 국가연합과 연방의 중간형태인 느슨한 주권국가연방이 될 것이며 각 공화국은 국내 정책의 영역에 관한 한 독자적인 정책을 펴나갈 것이다.
그러나 연방의 장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경제문제이다. 소연방 해체를 가속화시킨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독립추구였으며 8월의 쿠데타는 그것을 가능케 하였지만 그 동안 연방정부의 책임이었던 경제위기의 극복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책임을 이제 정치적 주권을 회복한 각 공화국 정부가 떠맡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70년이 넘도록 구조화된 중앙통제적 경제체제를 시장경제체제로 단시일 내에 전환한다는 것은 제도적인 요인과 인간적인 요인 때문에 불가능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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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일(1986), 소련의 정치제도와 언론 : 소비에트연방의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중앙대학교 언론연구소
이성백(2005), 스탈린주의 철학 비판, 경상대학교사회과학연구원
조은정(2007), 멘셰비키 지도자들의 권력 전략에 나타난 정치 문화, 고려대학교
한국러시아문학회(1993), 러시아 소비에트 문학의 창작방법의 문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2002), 소비에트체제 붕괴 후 10년 : 러시아연방 민주주의의 현실,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