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웬의 생애와 교육사상
- 최초 등록일
- 2002.10.15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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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웨이웬의 자(字)는 묵심(默深)으로 건륭 59년(乾隆,1794) 후난성 소양현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선조는 역대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열성적인 빈민구제사업으로 향촌에서 널리 추앙을 받아 왔던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급한 성격에 정의(正義)만을 중시하던 조부에 의해 소양현의 부채를 집안의 가산(家으産로) 모두 청산함으로써 점차 궁핍해져 갔다. 웨이웬이 어릴 때에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웨이웬의 부모님은 돈을 벌리에 온갖 고생을 다 하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웨이웬은 15세에 수재(秀才)에 합격하였다.집안 사정으로 책을 마음껏 사볼 수 없었으므로 항상 글방에서 책을 빌려다 읽곤 하였다. 그는 양명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경 18년(嘉慶, 1813)20세의 그는 발공(拔貢)에 천거되어 이듬해 부친과 함께 북경에 국자감에 입학하였다. 도광 2년(道光, 1822) 그는 비로서 남원 향시에 2등으로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된다. 그후 웨이웬은 북경에 거주하면서 가정교사로 생활비를 중당하는 한편, 과거를 위해 북경에 와 있던 당대의 명인과 교제하기 시작한다. 도광 5년에서 19년(1825-39)까지의 기간은 웨이웬 일생중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도광 6년과 9년에 실시된 두 차례의 예부 회시(會試)에서는 낙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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