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 공화정의 발전과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
《로마의 건국과 발전》
《이탈리아반도의 통일》
2) 지중해 세계 정복과 로마 제국의 등장
《지중해세계의 정복》
《공화정의 몰락》
3) 로마 제국의 발전과 몰락
《로마제국의 등장》
《제국의 발전》
《제국의 몰락》
4) 로마의 문화와 크리스트교의 발전
《로마 문화》
《크리스트교의 발전》
본문내용
《로마의 건국과 발전》
지중해를 중심으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던 로마는 라틴 인이 티베트 강변에 세운 작은 도시 국가로부터 일어났다.기원전 6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로마는 몇 개의 작은 촌락들이 모인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 도시들이나 반도 북부에 있었던 에트루리아 인의 도시에 비해 뒤떨어져 있었다.로마는 한때 에트루리아 인들의 지배를 받았으나, 기원전 6세기 말에 그들을 몰아 내고 공화정을 세웠다. 로마 공화정은 도시 국가의 방어에 으뜸 가는 역할을 맡은 귀족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2명의 집정관을 비롯한 모든 관직을 독점하였고, 최고 의결기관인 원로원도 귀족 출신으로 채웠다. 그러나 군사적인 역할을 점점 더 맡게 된 평민들은 귀족들의 권력 독점에 불만을 품고서 자신들의 권리를 높이기 위해 오랫동안 싸웠다. 그 결과 평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호민관직이 만들어지고 부유한 평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리키니우스 법에 의해 2명의 집정관 가운데 한명은 평민에서 뽑게 되었으며, 호르텐시우스 법에 의해 평민회의 결의가 원로원의 승인 없이도 나라의 법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모든 관직이 평민에게 개방되고,평민과 귀족은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평등해졌다.
그러나 이처럼 평미의 권리가 신장되긴 하였지만, 아테네와 같은 민주 정치 체제가 확립되지는 않았다. 정치 제도를 교묘하게 만들어 실지적으로는 귀족과 부유한 상층 시민들이 권력을 나눠 가지는 상태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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