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씨전>의 갈등 양상과 시대적 함의
- 최초 등록일
- 2000.08.23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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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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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머리말
조선후기 사대부들의 삶은 유교 공명주의와 가문주의의 지배를 강하게 받고 있었다. 출신 가문이 혼인이나 환로 진출 등 사회생활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침에 따라, 각 집안은 자기 가문을 명문화하기 위해 고심하게 되었고, 이러한 가문창달 의식은 다시 입신출세의 공명주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조선후기의 사회 풍조는 다음의 글들에서 쉽게 확인된다.
「嗚呼 富貴人所欲也 古今何異 而千萬不干涉之人 望其僥倖 晝夜奔競 未有如我國人之特甚者 此何故哉 專尙門閥 使人冒死相爭故也」(柳壽垣,『迂書』卷2 ‘論門閥之弊’)
「竊嘗聞之 中古士大夫 猶有黽俛赴擧之意 今也 擧一國而入於科 隱然 若性命義理之不可闕者」(朴齊家,『北學議』外篇 ‘科擧論’)
그런데 이러한 사회 풍조는 입신만을 절대시하는 가치관의 왜곡 현상과 함께, 자기 가문만 우월시하는 배타적 태도를 낳음으로써,「目今 門閥之弊已極 所謂兩班門地 亦不啻幾等幾級 相凌相駕」(柳壽垣, 앞의 책, 卷9, ‘論士庶名分’) // 「士大夫中 又有大家名家之限 名目甚多 交遊不相通」(李重煥,『擇里志』總論)
조선후기 사회에 적지 않은 병리현상을 초래하고 있었다. 가문창달에 대한 집착은 모든 자제들에게 입신을 강요하며 입신 여부로 그들을 평가하는 경향을 낳음으로써 가족간의 갈등을 야기하는 한 요인이 되었으며, 배타적 가문주의는 가문의 명예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함께 가문간의 경쟁과 대립을 조장하여 조선후기 정쟁을 한층 부추기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 략>
..이에 따라 가문주의와 공명주의 이념이 표면에 부각되면서 작품에 담긴 현실적 의미들은 대부분 묻혀버리고, 작품세계는 권징적 관념성만 강하게 드러낸다. 심각한 현실문제들을 관습적인 관념적 서술시각으로 형상화함에 따라, 관념이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작품세계가 관념화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국어국문학」제126호, 국어국문학회, 2000. 5)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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