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와 渤海의 政治的 交涉 過程
- 최초 등록일
- 1999.02.10
- 최종 저작일
- 199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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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머 리 말
新羅와 渤海를 韓國史上 [南北國]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朝鮮
後期 柳得恭(1748- ? )의 {渤海考}<序>(1784)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후 日帝 韓國 强占期의 渤海史는 韓國史와는 별도로 만주사의 영
역에서 대개 취급되었다. 그러다가 渤海史는 1960년대에 접어 들면서 南
) 渤海史는 일제하 대부분 만주사의 영역에서 취급되었으나 張道斌과 權悳
奎의 경우는 달랐다. 張道斌은 中古를 [三國時代와 南北國]이라 썼는가
하면, 權悳奎 역시 上古史 가운데 [南北朝]를 독립 서술하여 [新羅와 渤
海]를 韓國史上 에서 대등하게 취급하였다. 한편 오늘날 日本 사학계의
渤海史 인식에 있어서도 이를 대체로 滿洲史의 영역에서 취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日帝 時代]와는 달리 渤海史를 朝鮮史의 한 영역으로
취급하여 그들의 {朝鮮史 槪說}에 渤海史를 취급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역사 서술이 객관성을 찾아 가고 있던 1945년 이후의 일이었다. 張道斌,
1916@1946, {國史};{汕耘張道斌全集}卷1, 1981, 12_110 쪽. 權悳圭, {朝
鮮留記}, 京城:尙文館, 1924; {朝鮮史}, 京城:正音社, 1945년 改名再刊.
宋基豪, <渤海史關係 論著目錄>{韓國史硏究}33, 1981, 119쪽, 日帝下 硏
究 業績 참조. 浜田耕策, <渤海史おめぐる朝鮮史學界の動向---共和國と
[南北國時代]論について>{朝鮮學報}83, 1978.
北韓 사학계를 중심으로 韓國史上에 다시 새롭게 부각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南北國史가 韓國史上에 완전히 뿌리를
) 박시형, <발해사 연구를 위하여>{력사과학},1962; <渤海史硏究のために>
{古代朝鮮の基本問題}, 1974
내렸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이같은 이유는 사료 부족에도 그 원인이 있겠으
나, 더욱 큰 이유는 南北國史에 대한 인식의 한계성 때문이기도 하다. 단적
으로 요즈음 대부분 위 통사들이 지지하고 있는 新羅 중심적 [統一新羅와
渤海]라고 히는 시대 구분 방법인데, 이것은 분명 양국울 대등한 입장에서
) 韓우劤의 {韓國通史}(서울:乙酉文化社, 1970, 104쪽)와 李基白의 {韓國
史講座}[古代篇](서울:一潮閣, 1982, 363쪽)에서는 각각 [南北朝]와 [南
北國]이라 부르라는 전제하에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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