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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탐라에 대한 지배방식과 인식의 변화 (Perception and Ruling System of Tamla in Early Period of Goryeo Dynasty)

4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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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7.13 최종저작일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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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탐라에 대한 지배방식과 인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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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호서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역사와 담론 / 85호 / 261 ~ 302페이지
    · 저자명 : 김보광

    초록

    삼국시대 이래 탐라는 고유의 정치 질서를 유지하며, 신라로부터 성주, 왕자, 도상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으면서 나름의 질서를 인정받았다. 고려가 건국된 이후 925년부터 탐라는 고려에 공물을 바치면서 고려와의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고려도 938년에 탐라의 성주, 왕자 등을 ‘부여’하면서 사실상 탐라의 기존 질서를 인정하였다. 그러다가 현종대인 11세기 초 탐라는 고려에 주기를 요청하면서 고려로의 편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여, 고려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면서도 영역 바깥에 있는 일종의 기미주인 ‘번토’로 자리하였다. 탐라는 팔관회 의례에서 송, 일본 등과의 동일한 위치에 놓이는 등 고려 초부터 ‘탐라국’이라는 외국으로 존재하여 왔다.
    문종대에 들어와 1050년대에 고려는 탐라로부터 귤 100상자라는 진헌품의 종류와 양을 책정하고 1077~1079년 사이에 마침내 구당사라는 관직을 탐라에 설치하였다. 비록 실질적 행정을 담당하지는 않지만 고려가 탐라로 관료를 보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로써 탐라는 고려의 직접적인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어 숙종대에는 耽羅郡으로 재편되어 일반 군현으로 자리하였고, 의종대에는 耽羅縣으로 개편되고 현령, 현위가 설치되면서 마침내 지방 수령에 의한 행정이 집행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고종대에는 濟州로 개칭되고 외관도 副使, 判官이 설치되는 등 일반 군현화가 한층 진전되었다.
    고려는 탐라를 팔관회 의례에서 외국으로 대우하였으며, 이는 정종대에 탐라 출신의 고유가 빈공을 거쳐 과거에 응시한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고려는 탐라를 ‘남만’이라고 여겨 고려에 복속한 지역으로 인식하였다. 하지만 문종대 이후 탐라에 구당사가 설치되고, 탐라군, 탐라현의 순으로 군현화가 진전되면서 ‘탐라’ 출신을 이유로 한 관제상의 차별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섬이라는 자연지리적 조건상 관료들은 부임을 꺼려하였으며, 탐라의 풍속을 교화되지 못해 흉악하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이에 수령들의 경제적 수탈을 어느 정도 용인하였고, 이는 탐라가 반란을 여러 번 일으키는 빌미가 되었다.

    영어초록

    The country of Tamla maintained its own political order, which was acknowledged by Shilla Dynasty that granted the noble titles of Seongju, Wangja and Dosang to Tamla. In the year 925 and 938―after Goryeo Dynasty was established―Tamla offered tributes to Goryeo and the two countries forged a diplomatic relationship. In 938, Goryeo Dynasty also ‘granted’ the titles of Seongju and Wangja to acknowledge the political order of Tamla. In 1011, Tamla asked Goryeo Dynasty to be incorporated into the country as a general province. This request was accepted, and as a result, Tamla became an outland that lied outside the territory of Goryeo Dynasty while being under its sovereignty. From the early period of Goryeo Dynasty, Tamla was regarded as a foreign country, and it was treated equally with Song Dynasty and Japan at Goryeo Dynasty's national rituals such as Palgwanhoe.
    Then in the 1050s, Goryeo Dynasty decided the item and quantity of tribute―100 boxes of tangerines―to be offered by Tamla, and installed a local attaché called Gudangsa in Tamla in 1077 through 1079. Although this officer was not in charge of actual administration, it is significant that a Goryeo officer was sent to Tamla. This is seen as indicating that Tamla was now incorporated into the direct territory of Goryeo Dynasty. Around the year 1100, Tamla became a general province and renamed as Tamla-gun, then as Tamla-hyeon by the mid-12th century. By this time, the office of Hyeonryeong and Hyeonwi were installed in Tamla for actual governing by provincial governor. By the mid-13th century, it was again renamed to Jeju, and more officials were installed including Busa and Pangwan.
    In the beginning, Goryeo Dynasty treated Tamla as a foreign country, and people from Tamla had to pass Bingonggwa exam to become a government official. Goryeo Dynasty regarded Tamla as uncivilized region ‘Namman’―meaning barbarian people/land of the south―and saw the region as subjugated to Goryeo Dynasty. However as Tamla was incorporated into Goryeo territory and became a general province by the mid-11th century, discrimination in official positions disappeared. However, due to its geographical condition of being a distant island, officials were reluctant to be sent to Tamla. And customs of Tamla were different from Goreyo dynasty and were regarded as uncivilized and brutal. Government officials' economic exploitations in Tamla were more or less overlooked, and this triggered several uprisings in Tamla.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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