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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기억: 잊지 못하는 기억, 잊어버린 기억 (War and Memory : Unforpettenble Memory, Forpetten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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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7.03 최종저작일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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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기억: 잊지 못하는 기억, 잊어버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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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 수록지 정보 : 기독교와 문화 / 11호 / 65 ~ 100페이지
    · 저자명 : 최태육

    초록

    한국전쟁 당시 기독교인들과 관련된 학살 사건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북한의 인민군과 치안당국(내무서, 정치보위부), 지방좌익에게 학살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데 가담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전자는 휴전 이후 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면서 한국기독교인들의 잔공신앙을 형성하는데 깊은 영향을 주었다. 후자는 기독교인들은 물론, 민간인학살을 연구하는 사람들조차 알지 못하는 사건이다. 북한 치안당국은 1946년 2월 임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었을 때 부터 기독교를 ‘악질종교’로 규정하였고, 기독교인 상당수가 남한의 정치인과 미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동년 4월경부터 보안국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기독교내 다수의 교인을 친미주의자라고 판단하면서 기독교 내에 반동분자를 사찰하기 시작하였다. 북한 치안당국의 기독교 적대정책은 한국전쟁 개전 직후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종교인 사찰로 이어졌다. 인민군과 내무서원이 후퇴하면서 여러 곳에서 인민군, 내무서원의 지원을 받는 지방좌익에게 기독교인이 집단희생 되었다. 논산군 성동면 병촌교회의 경우 66명이 2일 동안 개척리 뒷산에서 학살되었다. 이는 북한 치안당국이 기독교인을 특정집단, 즉 반동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오제도, 조병옥, 장도영 등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현장에서 직접 학살을 지시한 사람들이라기보다 학살을 지휘명령한 사람들이었다. 오제도는 ‘회개’라는 기독교적 신념을 가지고 국민보도연맹원을 분류하였고, 조병옥은 세계를 사탄의 진영과 선한 진영으로 나누고, 사탄의 진영을 멸하는 것을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사탄의 진영은 5.10선거를 반대하는 제주도 주민이었고, 대구경북에서 체포된 이른바 오열들이었다. 장도영은 1947년부터 하나님의 군대론을 주창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진영을 수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6월 28일 수원에서 적색분자소탕을 지시하였고, 이 지시를 받은 육군정보국 방첩과장 한웅진과 부산경북지역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 김창룡은 민간인처형을 주도하였다. 문제는 오제도, 조병옥, 장도영 등 학살을 지휘명령한 사람들의 신앙이 당시 한국기독교의 주류 신앙과 일치하였고 이러한 신앙을 신념화 하였다는 점이다. 이 신념은 학살을 정당화 내지 적극화하였다. 이러한 신념화의 본질은 자신과 다른 신앙과 이념을 가진 사람을 적대하는 배타적 이원론이었다. 마찬가지로 1945년 8월 15일 이후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도 상호 적대에 근거한 배타적 이원론이었다. 자기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논리가 세계를 지배했고, 이 논리에 입각해 소련은 ‘팽창’ 정책을, 미국은 ‘봉쇄’ 정책을 펼치면서 서로를 대체하려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냉전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호적대 이념은 종교까지 파고들었고, 한국의 기독교와 북한의 치안당국은 이에 충실했다. 결국 상호 적대라는 신념과 이념이 충돌하면서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한 민간인학살이 발생하였다. 기독교가 돌아볼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왜 학살에 가담했는지, 그에 대한 회고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북한 치안당국도 기독교인들을 사찰했고, 반동으로 규정 이들 중 일부를 처형한 사실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적대의 기억은 우리에게 화해의 길 열어줄 것이다.

    영어초록

    Genocide related to Christians during the Korean War is twofold: Christians were killed by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police, and local leftists on the one hand and Christians participated in mass killings on the other. The first has affected to generate and reproduce the faith of ‘anti-communism’ in church groups whereas the latter has remained unknown to Christians as well as experts of massacres until today. At first, North Korea’s police had classified Christianity as a wicked religion ever since February 1942 when the interim National People’s Congress was established, and took a position against the Christian alliance of South Korean politicians and the United State of America. From April in the same year, National Security Bureau of North Korea labelled the act of the U.S. in the Korean peninsula as Imperialism and started inspecting reactionaries among Christians, judging them as the pro-United States. The inspection was based on the hostile policy towards Christianity, and thereby Christians were slaughtered by North Korean soldiers and local leftists while the people’s army retreated. By contrast, numerous Christians joined in civilian massacres during the Korean War. Several among them were in high positions, organizing and commanding mass killings. They represented the mainstream Christian belief at that time and used it for the justification of such violence. Importantly, the belief was founded on a dualism that excludes religious and ideological others. For example, Jae-Do Oh categorized members of Bo-do League rooted in a Christian creed, ‘repentance’ while Byung-Ok Jo divided the world the good and the evil, and understood that eliminating the evil bloc advances the Kingdom of God. Do-Young Jang regarded guarding the capitalistic bloc along with the U.S. as his vocation, advocating ‘God’s Forces’ in 1947. By this ideology, Chang-Ryung Kim was able to justify the civilian massacres at his hand. Likewise, the exclusive dualism has been affecting the Korean Peninsula ever since August 15th, 1945 just as the cold war was founded along with this exclusion and dualism. This ideology permeated religions. South Korean Christians and North Korea’s security forces were loyal to it. Civilian massacres at the hand of Christians took place by such an ideological collision. This is the point of reflection that why Christians who speak love and peace participated in mass killings. Throughout this paper, I illustrate these historical records and argue that reconciliation can be achieved only when both South Korea’s Christians and North Korean security forces acknowledge what had happened in the past and express their regr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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