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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계 조위의 피화ㆍ복권과 역사적 평가 (A study on historical evaluation of Jo Wi(曺偉) who was victimized by the massacres of Confucian scholars and reinstated after death)

2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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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28 최종저작일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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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계 조위의 피화ㆍ복권과 역사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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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수록지 정보 : 영남학 / 78호 / 7 ~ 34페이지
    · 저자명 : 이남옥

    초록

    본고는 사화에 희생된 조위의 피화와 복권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어려서부터 매부인 김종직과 당백부인 조계문에게 수학한 조위는 1472년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입격하고, 1472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사헌부 지평ㆍ홍문관 교리ㆍ충청도 관찰사ㆍ도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시문에 능해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연산군 즉위 후에도 한성부 우윤ㆍ성균관 대사성ㆍ오위도총부 부총관 등에 제수되고, 1498년에는 성절사로 명나라를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조위가 명나라에 성절사로 간 그때 조선에서는 무오사화가 일어났고, 그는 귀국과 함께 잡혀와 국문을 받고 유배가게 되었다. 그가 김종직의 처남이자 문인이며 김종직의 문집을 편집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1503년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성종 대를 대표하는 문장가로 인정받았으며,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해 외직을 청한 일로 忠孝兼全의 인물로 평가 받았다. 또한 연산군 대 폭정에 항거한 명현으로 추앙받았다. 이러한 평가로 인하여 김천의 경렴서원과 황간의 송계서원에 배향되었으며, 文莊이란 시호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5세손 조유, 6세손 조세붕, 8세손 조문검은 명현의 후손이란 이유로 증직되거나 관직을 제수받았다. 이는 조위를 충효겸전한 인물로 조정에서 현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어초록

    This article was written to explore historical evaluation of Jo Wi(曺偉) who was victimized by the massacres of Confucian scholars. From an early age, Jo Wi took lectures from Kim Jongjik and Jo Gyemun. He passed the entrance exam in 1472 and the bureaucratic exam in 1472. After that, he served as the Saheonbu Jipyeong, Hongmungwan Gyori, Chungcheong Province, and the chief of the king’s secretary. He was also good at writing and was favored by Seongjong(成宗). Even after the enthronement of Yeonsangun(燕山君), he served as Hanseongbu Wooyun, Sungkyunkwan Daesaseong, and Owidochongbu Buchonggwan. In 1498, he also visited the Ming Dynasty as a representative of the envoys. But then, the massacres of Confucian scholars happened. Upon returning Josoen(朝鮮), he was arrested, interrogated, and sent to exile. It was because he was Kim Jongjik's brother-in-law and disciple, and he edited the collection of Kim Jongjik's works. And then He died in exile in 1503.
    He was recognized as the representative writer of Seongjong's generation, and was evaluated as A person who was good at both loyalty and filial piety for requesting to work as a local official to provide for his parents. He was also revered as a great person who resisted the tyranny of Yeonsangun. Due to these evaluations, after his death, he held ancestral rites at the Gyeongryeom Seowon in Gimcheon and Songgye Seowon in Hwanggan, and was given the title of Munjang(文莊) by the Dynasty. And Jo wi’s 5th-generation grandson Jo Yu(曺逾), 6th-generation grandson Jo Syebung(曺世鵬), and 8th-generation grandson Jo Mungeom(曺文檢) became officials or promoted because they were descendants of great person. This was possible because Jo wi was highly regarded by the dynasty as A person who was good at both loyalty and filial piet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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