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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조 「圜丘樂章」 연구 (Won-gu Akjang During the Reign of Sejo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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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28 최종저작일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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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조 「圜丘樂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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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우리문학회
    · 수록지 정보 : 우리문학연구 / 52호 / 249 ~ 304페이지
    · 저자명 : 조규익

    초록

    조선왕조 초기에는 고려조로부터 원구제례를 답습했고, 그에 관한 논란들이 수시로 일어났다. 제례 자체의 존폐나 세부절차에 대한 詳考 등 원구제는 반복되는 고민과 모색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세조대에 원구제에 관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세조의 권력 장악 과정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던 만큼 유교적 대의명분을 통치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런 현실을 감안할 때, 아악보다 향악이나 당악을 포괄하는 속악 중심으로 궁중악을 개편하던 세종의 음악철학이나 역사인식이 세조의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답습할 가치가 컸다. 세조가 세종대의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악으로 개편하고, 원구악 또한 그 종묘악을 원용하게 했으며, 두 음악의 악장을 자신의 철학과 같은 입장의 崔沆으로 하여금 제작하게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세조대에는 두 가지 원구악이 존재한다. 조선이 원구제를 시행하는 일이 ‘참람하다’는 중세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원구제의 절차와 음악, 악장을 정비하게 한 결과가 「신제아악보 원구악장」이고, 몇 년 뒤 종묘악과 함께 다시 만든 것이 「新制略定樂譜 원구악장」이다. 아악에 올려 부른 아악악장이므로 제례악장 제작의 기존관습을 철저히 준수한 것이 전자이고, 종묘악과 함께 속악의 체계로 만들어 아악악장과는 제작방법을 달리 한 것이 후자다. 전자는 『시경』을 비롯한 동양 고전들과 중국 역대 왕조의 악장들로부터 구절들을 따다가 ‘짜깁기’ 해놓은 수준의 구조물로서, 중세적 보편성의 표지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리고 전자의 어떤 부분에서는 기존 제작관습의 지속적인 면을 보여주긴 하나 그 정도가 미약하다. 후자의 경우는 본격 시문학에 버금가는 미학성을 보여주는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세종의 遺意를 계승한다’는 이유로 대의명분 상 허약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고자 한 의도 때문일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명분 상 중세 질서를 떠받치고 있던 당시 臣僚들의 권한을 누르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조 만년에 결국 원구제는 특별한 설명 없이 폐지되었고, 세조 治世의 종말과 함께 원구제 또한 마지막을 고할 수밖에 없었던 중세질서의 정치 구조가 그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원구제의 시행이나 개정을 단순히 제사의식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정치구조 전반의 변화를 가늠하게 되는 단서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는 이유도 그 점에 있다. 「신제약정악보 원구악장」의 단계를 거쳐, 「신제아악보 원구악장」에서 원구제 폐지에 이르는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그 변화의 파장이나 의미는 매우 크고 깊었다. 그 과정에 잠재되어 있는 사건들의 정치적 복합성이야말로 역사 진행의 많은 추동력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 세조 조 원구악장의 존재의의라고 할 수 있다.

    영어초록

    At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the ritual of Won-gu had been followed since the Goryeo Dynasty, and had often been controversial. Consideration was given to either abolishing the Won-gu ceremony or changing some aspects of its procedures. During the reign of Sejo, some significant changes occurred in the Won-gu ceremony. Because the process by which Sejo seized power was abnormal. Confucianism could not be used as the basis of the reign. Given that reality, following the musical philosophy of Sejong who reorganized Gungjung-ak(royal court-music) was an excellent political choice by Sejo. For that reason, Sejo reorganized Botaepyeong and Jeongdaeup of Sejong into Jongmyo-ak, made Wongu-ak quote Jongmyo-ak, and had Choe Hang, who shared his philosophy, produce Akjang of two musics. For that reason, there were two kinds of Wongu-ak during the reign of Sejo. Despite medieval controversies, such as the view during Joseon Dynasty that enforcement of the Won-gu ceremony was a sort of ‘blasphemy’, the result of maintaining the ritual procedure, music, and Won-gu Akjang was “Sinje-A-akbo Won-gu Akjang,” and a few years later making it back along with Jongmyo-ak was “Sinje-yakjeong-akbo Won-gu Akjang.” The former is the work that thoroughly observed the traditional customs of the Akjang of A-ak, and the latter is the work that combined Sok-ak with Jongmyo-ak. The former has strong signs of medieval universality, as the structure which picked up and ‘patch-worked’ verses from Asian classical literatures including 『Shi Ching』 and Akjangs of Chinese dynasties. Some parts of the former shows characteristics of existing manufacturing practices, but to a weak degree. The latter also includes aesthetic elements comparable to authentic poetry. This probably is the reason that it was intended to strengthen Sejo’s fragile political position. On the other hand, it may have been a way to enforce the privileges of subjects who were the medieval order at that times. In Sejo’s later years, however, the Won-gu ceremony was abolished without any particular explanation, and the political structure of Middle Ages order, in which Won-gu ceremony to end along with the reign of King Sejo, collapsed. The enforcement or revision of the ritual of Won-gu was not regarded as just one problem, but as a clue to the huge change in overall political structure. Via “Sinje-yakjeong-akbo Won-gu Akjang”, the period from “Sinje-A-akbo Won-gu Akjang” to “the abolition of the ritual ceremony of Won-gu” was very short, but the meaning or magnitude of the change is very great and deep. The existence of Won-gu Akjang during the reign of Sejo was significant; the potential political complexities of the process could be indeed a key point among the many driving forces of historical progress.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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