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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先蠶祭와 親蠶의식 (The Seonjamje and Chinjamley of th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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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25 최종저작일 2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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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先蠶祭와 親蠶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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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고려사학회
    · 수록지 정보 : 韓國史學報 / 58호 / 125 ~ 149페이지
    · 저자명 : 한형주

    초록

    본고에서는 『국조오례의』에 수록되어 있는 선잠제와 영조대의 『친잠의궤』에 기록된 선잠제 및 친잠례를 상호 비교하여 선잠 의식의 조선전・후기의 변화를 검토하고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선잠제는 원래 왕의 친경이 끝난 후 왕비의 친잠을 통하여 농업과 잠업이 조선의 근본임을 보이고 백성들에게 勸桑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시행되었다. 원래 고려시대에는 관료들이 선잠제를 시행했지만 친잠이라는 왕비가 직접 담당하는 의식은 없었다. 조선 성종 8년(1477)에 이르러 처음으로 왕비의 친잠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왕이 친경을 행한 후 다음에 선잠에서의 왕비의 친잠이 모색되었다. 그런데 이때는 왕비가 창덕궁에서 친잠을 시행했고, 선잠단에서 시행되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아 양자는 서로 분리되었고, 이것은 명종대까지 지속되었다.
    영조 43년(1767) 왕이 왕비의 친잠을 부활시키면서 그동안 거행되지 못하였던 선잠제를 같이 시행하였다. 이때는 창덕궁밖의 선잠단에 왕비가 직접 나가기보다는 경복궁의 근정전 부근에다 선잠단과 채상단을 동시에 마련하고 여기에서 왕비의 의례가 시행되었다. 이것은 의례상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전기에 분리되어 있던 선잠제와 친잠은 영조대의 『친잠의궤』에서는 이를 혼합하여 왕비가 술잔을 올리는 제사를 친히 지냈고, 왕비가 경복궁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거가출궁으로 표시되었다. 또한 친잠의 장소가 경복궁으로 바뀌는 동시에 왕실 여성들이 참여하였고, 끝난 후에는 왕과 왕비에 대한 축하의 말로 이어졌다.
    이것은 이전의 의례가 변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단의 규모가 『국조오례의』단계보다 훨씬 축소되었다. 선잠단의 규모와 채상단의 규모가 과거의 것보다 1/3정도 작아진 것인데, 이것은 전체적인 규모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울러 제수는 『국조오례의』의 경우 규모에 맞도록 설치되었지만 영조대의 경우 간단하게 왕비가 작헌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이로써 전자가 제관의 3헌으로 술잔을 올렸다면 후자의 경우 간단하게 왕비의 1헌으로 끝났던 것이다.

    영어초록

    This paper compares Seonjamje(先蠶祭) and Chinjamley(親蠶禮) as recorded in GukjoOryeUi(國朝五禮儀) with those of Chinjamney ChinjamEugye(親蠶儀軌) from Yeongjo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Through this comparision, this paper examines the changes in Seonjam ceremonies from the former and the latter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and explores its significance.
    Through the queen’s doing sericulture after the king’s having done farm work, Seonjam ceremonies were originally implemented with a view to showing people that agriculture and sericulture are fundamental to the Chosun Dynasty and to emphatically encouraging people to undertake sericulture,Orignially in the Koryo Dynasty, the government officials held Seonjamje and there was no ceremony like Chinjam where the queen directly oversaw the ceremony. By Seongjon 8thyear(1477) of the Chosun Dynasty, the first Chinjam the queen directly supervised took place. During this period, Chinjam by the queen was sought after the royal ploughing in person. The queen undertook Chinjam at Changdeokgung and did not participate in the rite held at Seonjamdan, with the two events having separated from each other until the Myeongjong period.
    At Yengjo 43rd year(1767), the king reinstated Chinjam by the queen, at the same time conducting Senjamje that had not been taken place. Instead of the queen’s going to Senjamdan placed outside the walls of Changedeokgung, Senjamdan and Chaesangdan were both built around Geunjengjen at the Gyeongbukgung where the queen gave rites. This brought about drastic changes in the ritual. Senjamje and Chinjam, separated from each other from the early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were merged in ChinjamEugye in the Yengjo period. The queen personally gave rites where she offered liquor before the altar. The process of the queen going to Gyeongbukgung was called geogachwulgung(車駕出宮). Due to the change of the venue to Gyeongbukgung, female members of the royal family also participated in the ritual. Participants prasied the king and the queen after the ritual.
    Though there were rituals that had not been changed, the altar was considerably downsized from that described in GukjoOryeUi. Senjamdan and Chaesangdan were a third of what they used to be, reflecting the downsized scope of the whole ritual. In GukjoOryeUi, the sacricial food for the ritual was scaled to the ritual, but in the Yeongjo period, the queen offered liquor to the altar once. Unlike GukjoOryeUi where the ritual official offered liquor to the altar three times but the queen offered liquor once in the Yeongjo period.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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