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숙종대 장녕전(長寧殿) 건립과 어진 봉안 (The Establishment of the Jangnyeongjeon Hall and Enshrinement of King Sukjong’s Portraits During His Reign)

34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6.24 최종저작일 2021.05
34P 미리보기
숙종대 장녕전(長寧殿) 건립과 어진 봉안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 수록지 정보 : 미술사와 시각문화 / 27호 / 68 ~ 101페이지
    · 저자명 : 이종숙

    초록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은 재위 중인 국왕의 어진을 제작하는 전통을 다시 살려 1695년과 1713년에 자신의 어진을 진전에 봉안하게 했다. 1695년에 조세걸(曺世傑, 1636-?)이 그린 숙종 어진은 2본이었으며, 1본은 강화부(江華府)의 장녕전(長寧殿)에, 다른 1본은 창덕궁 선원전(璿源殿)에 봉안되었다. 강화는 외적방어에 유리한 환경을 갖춘 지역으로 조선 시대에 전략적 요충지이자 국가의 보장처(保障處)로 인식되었으며, 숙종 이전에도 이곳에 진전을 세우고 태조 어진과 세조 어진을 봉안한 일이 있었다.
    숙종은 1695년의 어진 제작과 진전 건립을 신하들에게 알리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진행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신하들 중 일부가 강화의 영전(影殿) 영건(營建)을 반대하자 숙종은 비밀리에 서둘러 어진을 강화로 내려보냈다. 이후 강화 유수 김구(金構, 1649-1704)가 격식을 갖추어 어진 봉안 의식을 엄숙히 거행하도록 건의함에 따라 숙종은 어진 봉안 행사를 공식적으로 준비하게 하였다.
    그는 예조의 관리들을 강화에 파견하여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장녕전에 어진을 봉안하게 했다. 이때 숙종 어진은 흑칠궤에 담긴 상태 그대로 장녕전 내부 어탑(御 榻) 위에 봉안되었다.
    1695년에 장녕전에 봉안된 어진은 숙종의 평소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학창의(鶴氅衣)와 당혜(唐鞋)를 착용하고 머리에 역괘고후관(易卦高後冠)을 쓴 모습의 전신상이었다. 이러한 옷차림은 조선 시대 국왕의 전형적인 어진과 큰 차이를 보인다. 숙종은 일상에서 학창의를 종종 착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 사대부들도 학창의와 고후관을 일상복으로 착용했다.
    1695년에 봉안된 숙종 어진은 1713년(숙종 39)에 새로 그려진 어진으로 교체되었다. 1713년은 숙종이 즉위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숙종은 이를 계기로 새로운 어진 제작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는 원유관본과 익선관본 어진이 각 1본씩 그려졌으며 원유관본은 강화 장녕전에, 익선관본은 창덕궁 선원전에 봉안되었다. 어진 제작을 위해 어용도사도감(御容圖寫都監)이 설치되었으며 어진 제작과 관련된 많은 사안들이 숙종과 신하들 간의 논의를 통해 결정되었다.
    어진을 장녕전에 봉안하는 의식도 미리 응행절목(應行節目)을 마련하여 엄숙히 거행했으며, 왕세자와 백관들이 경덕궁의 정문에 나와 강화로 출발하는 어진을 배웅했다. 이처럼 1713년의 어진 제작과 봉안은 거의 모든 면에서 1695년과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어진을 펼쳐서 봉안하지 않고 궤에 들어 있는 상태로 어탑 위에 봉안한 것은 이전과 동일했다. 장녕전과 선원전에 새로운 어진이 봉안된 후 기존 어진은 세초(洗草)되었다. 두 곳의 숙종 어진은 그의 유언에 따라 그가 승하한 이후인 1720년에 펼쳐서 봉안되었다.
    숙종이 1713년에 어진을 새로 제작한 표면적 이유는 기존에 장녕전에 봉안된 어진이 미진(未盡)하여 후대에 전하기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진’ 이라는 표현은 인물 묘사에 사실성이 부족함을 뜻하기보다는 국왕의 어진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학창의와 고후관 차림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어진은 사대부 초상화와 외형상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숙종은 여기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시각적으로 국왕의 권위와 우월함이 뚜렷이 드러나는 어진을 새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새로 그린 어진을 봉안한 뒤 기존 어진들을 세초해서 없애 버린 것은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초상은 국왕의 어진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로 여겨진다.

    영어초록

    King Sukjong (r. 1674-1720), the 19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resumed the production and enshrinement of portraits of present kings that had ceased for a long time. In 1695, Sukjong had Jo Segeol (1636-?) paint two portraits of himself. One of the two was enshrined in the Jangnyeongjeon, a portrait hall newly constructed on Ganghwa Island. Thought to be secure from foreign invasions and also located close to the capital where the royal palace was situated, Ganghwa Island would have probably been considered the most fitting location for the enshrinement of the royal portraits. King Sukjong did not inform his officials of his portrait production and the construction of the Jangnyeongjeon Hall. He secretly sent the portrait to Ganghwa Island even before the completion of the portrait hall. Following the proposal of Kim Gu (1649-1704), a local governor of Ganghwa Island, the king dispatched officials from the capital to have them conduct a ceremony for the portrait enshrinement. Different from portraits of the former kings in formal robes displaying their status as king, that of Sukjong enshrined in Jangnyeonjeon Hall showed him in a hakchangui robe and a gohugwan hat, plain and informal daily costumes for noblemen during the Joseon period.
    In 1713, King Sukjong instructed the painters to depict himself in the king’s official robes. A temporary office for the superintendence of the royal portrait production was organized. In the office, court officials actively expressed their opinions about the central issues in the creation of the portrait such as selecting painters and choosing the best sketch for the portrait. Two portraits of the king in total were produced at the time. One showed him dressed in a gollyongpo robe with an ikseongwan hat, and the other presented him in a gangsapo robe and a wonyugwan hat. The one depicting the king in a Gangsapo coat replaced the old portrait in the Jangnyeongjeon Hall. The officials prepared the manual for the conveyance and enshrinement of the portrait which didn’t exist before 1713. When the procession for conveyance, consisting of a palanquin carrying the portrait, ministers, armed soldiers, and a court musical band, set out for Ganghwa Island from the palace, the crown prince and officials in formal robes paid their utmost respect for the portrait outside the gates of the palace and bowed several times. After the new portrait was enshrined in the Jangnyeongjeon Hall, the old one was erased with water.
    The portrait of King Sukjong produced in 1695, depicting him in daily robes for nobility in Joseon Korea , may have been in appearance similar to the portraits of noblemen. Over time, however, the portrait that made him look quite ordinary would have been no longer valuable to him. The fact that King Sukjong officially produced the portraits of himself in royal attire in 1713 clearly proves that he would have realized the significance of a king’s portrait distinctly demonstrating the ruler’s authority and power. The king’s portrait in the Joseon dynasty manifesting his absolute superiority and dignity finally turned into the king itself.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미술사와 시각문화”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 전문가요청 배너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0:51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