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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음악장(場)의 형성과 나운영의 자리 (Where Did La Un-Yung Stand When Umak-Jang(音樂場) Formed after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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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23 최종저작일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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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음악장(場)의 형성과 나운영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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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민족음악학회
    · 수록지 정보 : 음악과 현실 / 65호 / 37 ~ 74페이지
    · 저자명 : 김은영

    초록

    이 논문은 냉전기 반공주의 이데올로기가 작곡가 나운영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였다. 해방 후 초기 2년 동안 음악가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민족음악문화 건설의 꿈을 꾸었다. 나운영도 해방가요와 건국가요를 작곡하였고 첼리스트로, 해외에서 조국으로 돌아오는 동포를 위한 음악회와 각종 기념식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또 민족음악 문화연구를 계획하며 음악가 정추와 민족음악문화연구회를 결성(1946. 3.) 했다.
    미소공위 실패 후 냉전이 한반도에 고착화되면서 남한의 음악장에서 좌파 음악가의 입지는 점차 축소되었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했다. 이런 정치적 위기 속에서 나운영은 1947년 6월, 성명서를 발표하고 우파 문화예술단체와의 제휴를 통해 남한 사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무결함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전쟁 동안 나운영은 한국 최초로 '한국현대음악 학회'를 결성하고 현대음악 레코드감상회를 열면서 한국에 현대음악이 보급되기 위한 계몽 활동을 시작했다. 또 1952년 작곡집을 출판하고 작품발표회를 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삶을 추구했다. 그러나 전쟁은 비정상적인 시간이었고 이 시기 음악은 군대에 의해 유지되는 구조였다. 나운영은 해군과 육군의 문관으로서 전시가요와 전시동요를 작곡했고 이 중< 통일행진곡>(1952) 과 <북진의 노래>(1953)는 반공국가주의를 전파하는 대표적 국민가요로 남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 온 나운영은 현대음악의 거장 메시앙으로부터 파리 유학을 허락받고 준비하던 중 여권발급 불가판정을 받게 된다. 전후 한국사회에서 납북자 가족과 과거 좌익활동의 이력은 음악가로서 중대한 결함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후 나운영의 음악 활동 중 한 부분은 국가주도 음악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나운영의 1945~1953년의 삶을 통해 냉전이 한 작곡가의 정치적 신념을 굴절시켜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었다. 때로 그의 삶은 정해진 세계가 아닌 경계에 위치해 있었고 그 결과 한국의 음악권력에서 배제되거나 고립되는 결과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평생 그의 음악인생은 민족음악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 온 수행적 삶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어초록

    This paper tracked the impact of anti-communist ideology on the life of composers and operations during the Cold War.
    In the early two years after liberation, musicians collaborated with each other and dreamed of building a national music culture. La Un-yung also composed songs of liberation and national foundation. And as a cellist, he performed at several concerts and ceremonies for compatriots coming back from overseas. In addition, he planned to study national music culture with others and formed the National Music Culture Research Association(1946. 3.) with a musician, Jeong Chu.
    As the Cold War became entrenched on the Korean Peninsula after the failure of the US-Soviet joint commission, left-wing musicians in South Korea gradually lost ground and they had to feel threatened by all kinds of terrorism during the performance.
    Amid this political crisis, La Un-yung presented a statement in June 1947 in order to prove his political integrity in South Korean society through partnerships with right-wing cultural and artistic organizations. During the war, La Un-yung formed the ‘Korean Contemporary Music Society’ for the first time in Korea and began enlightenment movement by holding occasions to listen to modern music records in order to spread modern music in South Korea. He also published a composition book in 1952 and presented his works in order to pursue a life as a composer.
    However, the war was an abnormal time and music was ruled by the military during this period. La Un-yung composed wartime songs and wartime children's songs as a civil official of the Navy and the Army, of which <Unification March> (1952) and <Song of Marching North> (1953) remain representative national songs that spread anti-communist nationalism.
    He returned to Seoul after the war and got a permission to study in Paris by Messian, a world-renowned master of modern music. However, he was unable to issue a passport.
    After the war, his background-having a family who got kidnapped by North Korea and career as a left-wing musician-played a role as a major flaw. Therefore, one part of his music activities had to be reserved for carrying out state-led music projects.
    Through his life from 1945 to 1953, it was possible to trace the process of how the Cold War refracted the political beliefs of a composer. Sometimes his life was on the border, not on the stable world, and as a result, he had to live with the consequences of being excluded or isolated from Korea's musical authority.
    However, it shows that his musical life had been a performative life that he had tried to expand the possibilities of national music throughout his lif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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