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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카라모노(唐物): 혼가쿠지 소장 〈석가탄생도〉의 일본 내 수용과 확산 (Karamono from Korea: The Acceptance and Diffusion of Birth of Śākyamuni in Hongaku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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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13 최종저작일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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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카라모노(唐物): 혼가쿠지 소장 〈석가탄생도〉의 일본 내 수용과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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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 수록지 정보 : 미술사와 시각문화 / 26호 / 230 ~ 259페이지
    · 저자명 : 김소연

    초록

    일본의 혼가쿠지(本岳寺)에 소장되어 있는 〈석가탄생도(釋迦誕生圖)〉는 조선 전기 왕실 발원 불화의 일례로, 석가모니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장면을 한 화면에 도해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제작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여러 점의 모사본이 제작되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선행 논문들을 통해 이 작품의 도상과 양식, 제작 시기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었는데, 본 논문은 이러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석가탄생도〉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이후의 역사에 주목하였다.
    〈석가탄생도〉의 첫 일본 소장자인 타카노 미치히토(高野道仁, 생몰년 미상)와 그가 활동했던 하카타(博多)라는 지역적 배경은 이 그림이 당시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고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타카노 미치히토는 16세기 말-17세기 초에 하카타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하카타를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으려고 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와 호혜적 관계를 맺은 상인 중 하나로, 〈석가탄생도〉는 임진왜란 후 조선에서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하카타는 카라모노(唐物) 교역의 중심지로, 다이묘들은 물론, 부유한 상인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끈 중국 물건들이 일본으로 유입되는 주요 항구였다. 미치히토의 사후에 같은 지역의 사찰인 혼가쿠지에 봉안된 〈석가탄생도〉는 약탈물인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 그림, 혹은 외국 그림이라는 뜻의 카라에(唐畵)로 규정되었다.
    16세기 후반 이후 혼가쿠지의 〈석가탄생도〉의 모사본이 다수 제작된다. 불화사 키무라 토쿠에이(木村徳栄, 대략 1640년대-1690년대에 주로 활동)가 제작한 초기의 모사본들은 황벽종(黃檗宗) 사찰들이 소장하고 있는데 중국 문화를 그대로 번안하여 받아들인 황벽 문화의 특성으로 미루어 보아, 원본인 〈석가탄생도〉는 외국 그림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카라에, 즉 중국 그림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석가탄생도〉의 시각적 요소들은 근세 일본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일본 문화와는 다른,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이질성이 조선풍이 아닌 중국풍으로 규정되어 적극적인 재생산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카라모노에 대한 열렬한 관심이 정치 권력과 대외 교역, 종교계까지 영향을 미치던 당시의 하카타에서 이국의 문물에 종교적,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정교한 감식안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규정한 카라모노의 개념과 범주에 근거한 것이었다.

    영어초록

    Housed in Hongakuji, Japan, Birth of Śākyamuni is a 15th-century Buddhist painting, produced in Joseon Korea, showing many scenes of the birth of Śākyamuni narrative. This work, transported for unknown reasons to Japan, is notable because it has been copied many times by Japanese painters. This paper focuses on the history of Birth of Śākyamuni following its mysterious migration to Japan, especially its reception and the subsequent diffusion of its copies. Both Takano Michihito (active late 16th century), the first Japanese owner of the painting, and his regional background provide a clue to understanding how Birth of Śākyamuni was received in its new environment. Then the center of the international karamono (imported Chinese artworks) trade was the port city of Hakata where various Chinese objects flowed into Japan. A Hakata merchant of the late sixteenth century, Michihito had a reciprocal relationship with Toyotomi Hideyoshi (1537-1598). Considering his connection to Hideyoshi and the fact that the painting was in a poor condition,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Birth of Śākyamuni was war booty taken during Hideyoshi’s invasion of Korea (1592-1598), after which it was given to the Hakata merchant who had supported Hideyoshi during the war. After the death of Michihito, the painting was donated to Hongakuji and accepted as “kara-e,” which means “Chinese painting” or, sometimes, “foreign painting.” This labelling led to its illegal transmission being concealed, thus increasing the value of the work. It was made possible due to Hakata’s commercial and international atmosphere.
    Among the copies of the Hongakuji Birth of Śākyamuni produced after the seventeenth century were early copies made by Kimura Tokuei (active ca. 1640s-1690s), a professional Buddhist painter. These were owned by monasteries belonging to the Ōbaku sect. The Ōbaku sect, introduced to Japan during the seventeenth century, was characterized by its enthusiastic pursuit of Chinese culture. It seems that copies of Birth of Śākyamuni were celebrated by the Ōbaku monks—the possible commissioner of Kimura Tokuei’s copies. They seem to have regarded the Hongakuji Birth of Śākyamuni as a Chinese painting. In premodern Japan, the foreignness of Birth of Śākyamuni was perceived as Chineseness, not Koreanness. This misunderstanding or reinterpretation might have led the Ōbaku monks to commission copies of the Hongakuji original. It was a way of assigning religious and artistic value to an anonymous foreign object in Hakata, where the karamono boom extended to the political, commercial, and religious spheres. This way of estimation was based on a variable and often arbitrary notion of karamono developed by the Japanese rather than precise connoisseurship.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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