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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巖日錄:1603∼1641』에 대한 자료적 검토 (Data Review on 『Gyeamillok: 1603-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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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05 최종저작일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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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巖日錄:1603∼1641』에 대한 자료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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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고려사학회
    · 수록지 정보 : 韓國史學報 / 57호 / 197 ~ 226페이지
    · 저자명 : 이성임

    초록

    본 논문은 17세기 전반 경상도 예안지역의 광산김씨 金坽(1577∼1641)의 일기자료인 『溪巖日錄』(1603〜1641)의 자료적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溪巖日錄』은 4종으로, 1607년의 『丁未日錄』 원본, 후손의 전사본, 조선사편수회의 등사본, 1997년 국편 간행 『溪巖日錄』 上·下가 그것이다. 원본은 계암 김령이 직접 작성한 것이고, 이후 전사본부터는 후손들이 수정해서 편찬한 자료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97년 탈초하여 간행한 『계암일록』은 원본이 아니라 전사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계암일록』의 탈초작업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사편수회에서는 1944년 2월 계암종택에서 『계암일록』을 빌려다가 1945년 2월 탈초를 완성했으나 해방이 되는 바람에 간행을 못했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 작업을 완성했다.
    『계암일록』 원본은 ‘간지+日錄’의 형태를 취했다. 현재 남아 있는 일기는 39년분으로 1814년에 당시까지만 해도 39책의 일기가 남았을 것이나 현재는 1책만 남아 있다. 『丁未日錄』은 1607년의 친필일기로 전사본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측면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전사본은 1814년 11월 즈음에 후손들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김령이 시호를 받는 것을 계기로 하여 『日錄』 39책을 8책으로 재편했다. 이를 전사한 인원은 8∼9명 이상으로 한 명이 일정 분량씩 나누어 베꼈다. 이 자료는 현재 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중앙 관직자인 鄭元善으로부터 서문을 받아 일기 8책 뒤에 부쳤다. 17세기 전반의 일기 원본을 19세기 전반의 후손들이 재편한 것이다.
    문제는 원본과 전사본이 내용상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김령의 일기는 원본에서부터 이미 수정작업이 진행되었다. 글자 위에 겹쳐서 쓰거나, 검은 먹으로 글자를 지워 글자를 확인할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이 때의 수정은 그저 지우는 수준에 불과했다. 대폭적인 수정은 전사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607년 『丁未日錄』을 대상으로 할 때 전사본과 원본의 글자비율은 28.5:100 이었다. 즉, 일기의 70%의 내용이 삭제되었다. 이는 일기내용을 검토해 보아도 확인된다. 전체 394일의 일기 중에 원본 그대로 남은 경우는 6일(1.7%)에 불과했다. 나머지가 삭제되거나 축약되었다. 내용 전체가 삭제된 경우가 245일(63.8%) 이었고, 일부를 남긴 경우가 132일(34.4%) 이었다.
    여기서 일기의 삭제와 축약의 기준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전사 당시에 후손들이 만든 원칙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요청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일기를 삭제할 경우 일기의 내용도 감안했지만 날짜의 간격을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4∼5일 간격으로 삭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10일 이상을 한꺼번에 날린 경우도 확인된다. 지워진 부분은 친인척의 왕래와 안부, 편지왕래, 질병과 치료, 제사, 노비, 농업 등 개인의 신상이나 일상적인 부분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계암일록』은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가정사에 대한 기록이 적고 상대적으로 유생의 활동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본래부터 그러했던 것이 아니고 후손들의 전사과정에서 삭제하거나 축약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부계 중심이라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친인척의 왕래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외가나 처가와 관련된 내용은 삭제하여 자연적으로 부계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계암일록』 내의 제사설행을 분석한 결과가 다른 지역보다 100년이 앞선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도 이러한 데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예민한 인물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강 鄭逑에 대하여 원본에서는 치졸할 정도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 반면, 전사본에서는 사적인 감정을 거의 빼버리고 행적만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계암일록』은 연구의 범위가 제한된 불완전한 자료이다. 사실 우리가 활용하는 자료가 후손에 의하여 재편성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이유야 어찌되었든『계암일록』이 갖는 자료적 가치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후손들이 일기에 추가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아 제한적이나마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겠다.

    영어초록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data characteristics of 『Gyeamillok』(1603-1641) which is a daily journal written by Kim Yeong(1577-1641) of Gwangsan Kim Clan who resided in Yean, Gyeongsang-do in 17th Century.
    Currently, "Gyeamillok" is remained in one original and 2 transcribed copies.
    The original is an essay written by Gyeam Kim Yeong himself, and transcribed copies were rewritten by his descendants.
    『Gyeamillok』deciphered and issued by the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in 1997 is not based on the original but transcribed copy.
    The decipherment of 『Gyeamillok』 started in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The Korea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rented 『Gyeamillok』 from the House of Gyeam in February 1944 and deciphered it in February 1945, which was not issued then due to the Independence from the Japan Occupation. Later, the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completed the work.
    The original 『Gyeamillok』 was written by Kim Yeong in the type of 『Ganji + Illok』.
    Currently the journal left is for 38 years, therefore 38 volumes might be remained in 1814.
    However, presently the original journal left is only for one year. It is called as 『Jeongmiillok』 which is a handwritten journal in 1607. Its historical value is very high, since it is a standard to judge the value of transcribed copy.
    Transcribed copies were issued by his descendants around November 1814.
    When Kim Young received posthumous title, 38 volumes of 『illok』 were rearranged in 8 volumes.
    Over 8-9 descendants transcribed certain amounts.
    The data are presently stored in the Korean Studies Advancement Center. Also, they added a preface written by Jeong Wonseon, the Government Official, to the end of 8 volumes of the journal.
    The original journal in the first half of 17th Century was rearranged by his descendants in the first half of 19th Century.
    The problem is that there are many discrepancies in contents between the original and transcribed copies.
    Corrections had already been proceeded with in the Kim Yeong's original journal.
    Letters were unrecognizable by overwriting or erasing with black ink. But, the correction at this point was no more than a clearing level.
    Drastic correction had been made in the progress of transcription. The ratio of contents of transcribed copy and original was 28.5:100, when considering 『Jeongmiillok』 in 1607.
    It means that 70% of the journal's contents was deleted. This is verifiable by reviewing the contents of journal.
    Out of total 384 days of the journal, intact original contents were only for 6 days(1.7%).
    The remained were deleted or abbreviated. The case of whole contents deletion was for 245 days (63.8%), and the case of partial deletion was for 132 days (34.4%).
    Maybe, the situation in 1607 was special, but after all, the data value of transcribed copy was significantly reduced.
    Here, it is necessary to verify the criteria for deletion and abbreviation of the journal. At the time of transcription there seemed to be a manual for the work made by the descendants.
    Further in-depth studies are requested for this area but generally you can point out the follows.
    When deleting the journal, they seemed to consider the spacing of the date as well as its contents.
    Usually, they made it a rule to delete contents in the interval of 4-5 days. But sometimes more than 10 days of deletion is also checked.
    The deleted parts were mostly about personal or a routine part of the individual such as come-and-go and greetings with relatives, mail correspondence, illness and treatment, ancestral rites, servants, and agriculture.
    『Gyeamillok』 is unstable data with the restricted scope of study. When you think about the fact that the data we utilize was reorganized by descendants, you can not cease to regret.
    Anyway, the data value of "Gyeamillok" is only halved by the reorganization. Fortunately, however, there were no added contents to the journal by the descendants.
    It is necessary to keep in mind that journals can be edited by descendants just like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or 『a collection』 of individual´s work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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