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峰庵 邊月周의 生涯와 思想 (Bongam Byeon Wol-ju's Life and Thought)

한국학술지에서 제공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다양한 논문과 학술지 정보를 만나보세요.
49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6.05 최종저작일 2014.12
49P 미리보기
峰庵 邊月周의 生涯와 思想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대각사상연구원
    · 수록지 정보 : 대각사상 / 22호 / 121 ~ 169페이지
    · 저자명 : 이수창

    초록

    峰庵 邊月周(1909-1975)는 1909년 11월 13일 全南 長城郡 長城面 長安里 337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의 식민치하에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친이 3․1독립운동에 가담하여 獄苦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光州高普 4학년 때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광주고보에서 퇴학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광주고보에서 퇴학당하고 나서 長城 白羊寺에 몸을 의탁해 있다가 1930년(22세) 사미계와 구족계를 받았다. 또한 그는 28세 때인 1936년 白龍城으로부터 傳法偈를 받았다. 그는 출가 후 陳震應 강백으로부터 一代時敎를 배웠다. 그런 다음 禪院에서 십년 이상 수행했다. 그 결과 禪과 敎를 겸비한 宗匠이 되었다.
    그 후 그는 비구·대처간의 종권 다툼이 있기 전까지 주로 해인사에 주석하면서 교화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55년 이후에는 해인사에서 설립한 海印大學(1961년 馬山大學으로 교명변경)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오직 후학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1975년 2월 4일 진해 대광사에서 入寂했다.
    한편 봉암의 사상은 그의 實踐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의 修行觀은 각자의 根機에 따라 수행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느 한 가지 수행법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마치 병의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하듯이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권장했다. 또한 그는 계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戒律觀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의 敎化觀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법을 설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남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역량을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峰庵의 法統觀은 자기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法統은 臨濟宗法일지라도 宗祖는 太古普愚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峰庵의 政治觀은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政敎分離의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승려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봉암의 社會觀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에만 만족해서는 안 되며, 이웃을 위해 四攝法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을 ‘無相行’이라고 표현했다. 이렇듯 봉암의 일생은 수행과 교화에 전념한 삶이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도 수행과 교화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앎과 실천이 일치했던 근래에 보기 드문 先覺者였다.

    영어초록

    Bongam Byeon Wol-ju(峰庵 邊月周: 1909-1975) was born at 337 Jangan-ri, Jangseong-myeon, Jangseong-gun, Jeollanam-do on November 13, 1909. He went through hardship in his childhood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because his father languished in jail for his joining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He was also put in prison after being expelled from school for the charge of leading the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 when he was a fourth-grade student at Gwangju Advanced Elementary School.
    Since then, he stayed at Baekyang-sa Temple, Jangseong and received both sāmaṇera-sīla and upasampadā at the age of 22 in 1930. In addition, he received jeonbeop-ge(傳法偈, poetic verses transmitting the truth) from Baek Yong-seong(白龍城) in 1936 when he was 28 years old. After he abandoned secular life, he learned ildaesigyo(一代時敎, all teachings of the Buddha from Instructor Jin Jin-eung(陳震應). And he practiced for over ten years at a meditation hall. As a result, he became a master of both Zen meditation and the doctrinal teaching.
    He dwelled and preached at Haein-sa Temple until the conflict for the power of the Buddhist Order between bhikkus and married Buddhist monks broke out. After the year of 1955, he devoted himself to teaching disciples as a professor of Haein College(its name was changed into Masan College in 1961) established by Haein-sa Temple. He entered nirvāṇa in Daegwang-sa, Jinhae on February 4, 1975.
    Bongam's thought can be examined through his view of practice. He insisted that every individual should practice according to their own readiness(根機). He didn't adhere to only one way of practice, but recommended different ways of practice depending on their own readiness as doctors prescribe proper medicine by considering patients' symptom. Furthermore, he thought that sīla-vinaya should be observed. He also emphasized that Buddhist monks must preach according to people's readiness. In order to teach others, monks should build up their capabilities first, he said.
    Bongam took an unchanging stand for the dhamma tradition as it was related to our identity. And he insisted that even though the dhamma tradition was imjejongbeop(臨濟宗法), the founder should be Taegobowu(太古普愚).
    He sticked to the principle of the separation of state and church. So, he sternly warned Buddhist monks not to be involved in politics. Bongam's social stance was based on reality. He asserted that we should not be complacent with our enlightenment and should implement the four beneficences(cattāri sangaha-vatthūni, 四攝法) for our neighborhood. He described it as 'musanghaeng(無相行)'. As we have seen, Bongam's life was dedicated to practice and teaching. And his thought didn't diverge from the category of reforming through teaching. He was a rare religious pioneer as his practice was in agreement with his knowledge.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대각사상”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1월 23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37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