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適菴 曺伸의 일본 사행 체험과 그 의의 (JEOK AM CHO SIN’S (適菴 曺伸) Experience of Sightseeing in Japan and it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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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05 최종저작일 2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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適菴 曺伸의 일본 사행 체험과 그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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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양한문학회
    · 수록지 정보 : 동양한문학연구 / 66권 / 5 ~ 41페이지
    · 저자명 : 김정란

    초록

    본고는 성종~중종대 역관ㆍ내의원정 등을 지낸 서자 출신 문인 適菴 曺伸(1454~1529)의 기해통신사 파견을 위한 통신단에 발탁되는 과정과 그의 첫 번째 일본 사행 체험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조신은 25세에 일본에 통신사 파견을 위해 문사를 증원하는데 뛰어난 시 능력으로 발탁되어 사행단의 통신사 압물관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내시교관, 왕자군사부, 사역원정, 내의원정 등을 두루 거치며 중국에 7번, 일본에 3번 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조선 전기에는 일본과의 사신 왕래가 빈번하였다. 그에 따른 사행단 파견 또한 여러 차례였지만, 중국 사행에서 남긴 일화나 사행시와는 달리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조신은 일본에 세 차례나 사행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였고, 관련 기록과 시문이 『소문쇄록』과 『적암유고』등에 몇 편 전하고 있어 그 자료를 총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조신이 서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재를 인정받아 성종에게 특별히 발탁된 계기는 무엇이며, 주변의 축하, 그리고 그가 실제 사행에서 문인으로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했는가, 사행 경험을 통해 대일 외교에 대한 조신의 인식을 그의 작품을 통해서 어떻게 구체화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았다. 또한 조신은 성종대 신진 사림의 종장인 金宗直의 처남이자 신진사류를 대표하던 曺偉의 庶弟로, 당대 신진사류와 많은 교유가 있었다. 특히 성종10년 기해년 사행에서는 종사관 金訢ㆍ군관 趙之瑞와 함께 대마도에 체류하면서 수창시를 주고받는다. 이를 통해 고달프고 위험한 일본 사행길에서 이들이 맺게 된 돈독한 동류의식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조신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서자라는 신분상의 한계로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중국과 일본으로 자주 사행을 따라다니게 되어 적지 않은 견문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정사나 부사 등의 고위 관료가 남긴 사행 기록과는 상당히 다른 시각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깊이 살펴볼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지금까지의 통신사행에 관한 연구들은 조선 후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비해 조선 전기 통신사행에 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자료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조선 전기에 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조선 후기 못지않은 구체적인 면모들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영어초록

    This paper focused on the process of selecting Jeok Am Cho sin(適菴 曺伸) (1454-1529), a Seoja-born writer who served as a station officer and inner expedition of King Seongjong to Jungjong University, and his first Japanese meandering experience. At the age of 25, Cho sin(曺伸) was selected for his excellent visual ability to increase the number of civil servants to send telecommunications companies to Japan, and began his official career when he was appointed as a correspondence officer of the meandering group. Since then, he has been to China seven times and Japan three times through eunuchs, the Prince's Military Department, the Ministry of the Interior, etc.
    During the early Joseon Dynasty, envoys from Japan were frequent. There have been several dispatch of speculators, but unlike anecdotes and acrostic poems left in Chinese speculation, there is not much left. In such a situation, Cho sin(曺伸) participated in Japan three times as a member of the speculative group, and related records and poems were transmitted in 『Somunswaerok』(『謏聞瑣錄』) and 『Jeokamyugo』(『適菴遺稿』), so the data were examined as a whole.
    Although Cho sin(曺伸) was a scribe, we learned how he was specially selected by King Seongjong in recognition of his poetry, how he played a role as a literary man in actual gambling, and how his work embodied Cho sin’s (曺伸) perception of diplomacy with Japan. In addition, Cho sin(曺伸) was the brother-in-law of Kim jong jik(金宗直), the general of King Seongjong’s New Sarim, and the brother-in-law(庶弟) of Cho Wi(曺偉), who represented Shinjin-saryu, and had a lot of friendships with Shinjin-saryu at the time. In particular, in the 10th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he exchanged Reward singing(酬唱) poetry while staying in Daemado Island with his officials Kim heun(金訢) and Cho ji Seo(趙之瑞). Through this, we looked at the strong sense of classification that they formed on the hard and dangerous Japanese meandering path.
    Cho sin(曺伸) had excellent academic ability, but was unable to reach a high government office due to the limitations of his status as a scribe. However, he often follows meandering to China and Japan, leaving a considerable amount of knowledge. And it was thought to be meaningful to examine deeply in that it was a record of a very different perspective from the record of speculation left by high-ranking officials such as political affairs and adverbs.
    Studies on communication gambling so far have focused on the late Joseon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lack of data may be the biggest reason why research on Joseon's telecommunications history has not been conducted properly. However, if research on the early Joseon Dynasty continues with a little interest, it is expected that specific aspects as much as the late Joseon Dynasty will appear.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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