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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악현 중 삼현 사용에 관한 사적 검토-세종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종묘제례악현 비교를 통하여- (The historical Examination of Using Samhyeon in JongmyoJeryeak Ak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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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04 최종저작일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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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악현 중 삼현 사용에 관한 사적 검토-세종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종묘제례악현 비교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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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국악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음악연구 / 56권 / 409 ~ 428페이지
    · 저자명 : 허익수

    초록

    조선 건국 이후 세조 10년 이전까지 종묘제례에는 고려의 태묘에 사용하던 대성악을 사용하였다. 이후 세조 10년에 이르러 향악곡인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한 이래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세종대부터 현재까지의 종묘제례악 악현도 중 영조대『대악후보』는 세조대『세조실록악보』와 성종대의『악학궤범』· 숙종대의『종묘의궤』· 정조대의『춘관통고』· 일제시기 함화진의『조선악개요』는 성종대『국조오례의』의 악현도와 동일하다. 단『조선악개요』에는 ‘세종조종묘악현도’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오기로 여겨진다. 또한『춘관통고』및『조선악개요』는『증보문헌비고』 ‘보(補)’와 유사하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문헌사료를 조사해 본 결과 종묘제례악 악현의 삼현 출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종묘제례의 음악을 보태평과 정대업으로 채택한 시기의 문헌사료인『세조실록악보』‘종묘 등가․헌가 도설’을 통해 종묘제례악 악현에 처음으로 삼현이 출현한 시기는 세조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종묘제례악 등가 악현 내 삼현은 세조대 이후 19세기까지 현금․가야금․향비파가 각 1씩 진설되었으나 20세기 초 악현인『조선악개요』 ‘대정 6년 현행 종묘 악현’에는 출현하지 않는다. 따라서 종묘제례악 등가 악현에서 삼현이 사라진 시점은 대정 6년인 1917년으로 볼 수 있다.
    종묘제례악 헌가 악현 내 삼현이 진설된 시기는 세조대에서부터이며 삼현이 사라진 시기는『증보문헌비고』사료 안의 기록인 ‘인조 21년’부터 삼현이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한 선행연구들은 종묘제례악 헌가 악현에서 삼현이 사라진 시점을 인조 21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나『증보문헌비고』의 사료가 ‘인조 21년’ 다음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보(補)’ 뒤에 출현하며, 피리와 장고의 악공 수를 제외하면 『증보문헌비고』가 정조대의『춘관통고』와 동일한 점으로 보아『증보문헌비고』의 사료는 정조대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인조실록』의 기사를 통해 인조 21년 당시에 종묘제례를 지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종묘제례악 헌가는『증보문헌비고』의 ‘인조 21년’의 사료보다는 그 다음 시기 사료인 숙종대의『종묘의궤』에서부터 삼현이 제외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단 향비파의 경우 고종대에 헌가 악현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났다가 사라진 점이 특이하다.

    영어초록

    From the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until the 10th year of King Sejo’s reign, JongmyoJeryeak(宗廟祭禮樂) used Daesungak(大晟樂) which was the Goryeo dynasty’s national ancestral shrine ritual music. Since the 10th year of King Sejo’s reign, Botaepyeong(保太平) and Jeongdaeeop(定大業)-Hyangak(鄕樂)-were chosen and used for JongmyoJeryeak(宗廟祭禮樂). Among Akhyeon(樂懸) of JongmyoJeryeak from the King Sejong’s period to the present, Daeakhubo(大樂後譜) of King Yeongjo’s period is same as Sejosilokakbo(世祖實錄樂譜) and Akhakgwebeom(樂學軌範) of the age of King Seongjong, Jongmyouigwe(宗廟儀軌) of King Sukjong’s period, Chungwantonggo(春官通考) of King Jeongjo’s period, and Joseonakgaeyo(朝鮮樂槪要) by Ham Hwa-jin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re same as Akhyeon of Gukjooryeeui(國朝五禮儀) of the age of King Seongjong, provided that the term of ‘Sejongjojongmyoakhyeondo’ in Joseonakgaeyo is considered a typo. In addition, Chungwantonggo and Joseonakgaeyo are similar to ‘Bo’(補) in Jeungbomunheonbigo(增補文獻備考).
    As a result of examining historical materials based on the information mentioned above it is concluded for the appearance of Samhyeon(三絃) of JongmyoJeryeak Akhyeon as follows: From the description of ‘Jongmyo Deungga, Heonga Doseol’ in Sejosilokakbo, a literature in the age when Botaepyeong and Jeongdaeop were selected for JongmyoJerye, it was found that Samhyeon first appeared in JongmyoJeryeak Akhyeon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s period.
    For Samhyeon in JongmyoJeryeak Deungga(登歌) Akhyeon, Geomungo(玄琴), Gayageum(伽倻琴) and Hyangbipa(鄕琵琶) were arranged from the King Sejo’s period until the 19th century but did not appear in ‘Daejeong 6 nyeon hyeonhaeng Jongmyo Akhyeon’ in Joseonakgaeyo. Therefore, it can be estimated that Samhyeon disappeared from JongmyoJeryeak Deungga Akhyeon in 1917, the 6th year of Daejeong.
    It was from the King Sejo to King Seongjong’s period when Samhyeon was arranged in JongmyoJeryeak Heonga(軒架) Akhyeon and Samhyeon did not appear from Heonga Akhyeon in King Injo’s period. Previous studies on Samhyeon assume that it was the 21st year of King Injo’s reign when Samhyeon disappeared from JongmyoJeryeak Heonga Akhyeon. However, it is proper to estimate that the literature of Jeungbomunheonbigo is of the King Jeongjo’s period in that the literature of Jeungbomunheonbigo did not appear after the 21st year of King Injo but appeared after ‘Bo’ and is same as Chungwantonggo of the age of King Jeongjo, except the number of the court musicians of Piri and Janggo. Besides, through the article of Injosilok(仁祖實錄), it is found that JongmyoJerye was not performed in the 21st year of King Injo’s reign. Therefore, it would be proper to consider that Samhyeon of JongmyoJeryeak Heonga was excluded from Jongmyouigwe(宗廟儀軌) written in the King Sukjong period rather than Jeungbomunheonbigo. For Hyangbipa, however, it is remarkable that it once appeared in Heonga Akhyeon in the reign of Emperor Gojong and then disappeared.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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