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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堤 金山寺 조각승 淸虛의 造像 활동 (The Career of the Monk-Sculptor Cheongheo of Geumsan-sa Temple in Gimje)

3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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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30 최종저작일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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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堤 金山寺 조각승 淸虛의 造像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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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미술사학회
    · 수록지 정보 : 미술사학연구 / 279280권 / 279280호 / 203 ~ 237페이지
    · 저자명 : 송은석

    초록

    조각승 청허는 경상 경흥사에 봉안중인 목조석가불좌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의 ‘全羅道金山寺畵員’ 기록에 의해 전북 김제 금산사 출신의 조각승으로 확인되었다. 여러 발원문 기록에 의하면, 그는 1605년에서 1645년까지 활동하였으며, 그의 조각가로서의 생애는 보조 조각승 시기와 수조각승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즉, 1605년부터 1622년까지의 전반기는 元悟, 覺敏 등 원오파 조각승들 아래에서 보조 조각승으로 활동했던 시기이며, 1640년에서 1645년까지의 후반기는 淸憲派에 속한 조각승들을 보조 조각승으로 삼아 수조각승으로 활동하던 시기이다. 1622년부터 1640년까지의 약 18년 동안은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보조 조각승 시기인지 수조각승 시기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청허는 초기의 보조 조각승 시기에는 원오파에 속하여 여러 불사에 참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조각승 시기에는 원오파 조각승들이 아니라 청헌파 조각승들과 함께 했으며, 원오파 양식이 아니라 청헌파 양식을 따라 불상을 제작한 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조각승 유파 내에서 師資相承하는 관례가 일반적이었던 조선 후기에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전혀 없었던 일도 아니었다. 熙藏派의 보조 조각승들과 함께 불상을 조성한 無染派 출신의 道祐나, 무염파 조각승들을 보조 조각승으로 삼아 함께 불상을 조성한 원오파 출신의 幸思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조각승 청허도 이들과 동일하게 타 유파의 보조 조각승들과 함께 불상을 조성한 ‘합동작업’ 방식을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1640년대에 제작된 불상들 가운데 아직 원오파만의 작품이 발견되지 않은 점에서 보면, 청허가 수조각승으로 활약하던 1640년대에 원오파는 이미 유명무실하게 되어 수조각승을 도와 불상을 조성할 보조 조각승들이 남아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원오파 조각승인 幸思가 無染派 조각승들의 도움을 받아 불사를 행한 시기가 1648년인 점도 청허가 1640년대에 다른 유파인 청헌파 조각승들의 도움을 받았던 사실과 상통한다.
    이러한 사실은 복장발원문의 기록에서뿐 아니라 원오파, 청헌파 불상 양식의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복장발원문에 의해 수조각승 청허의 작품으로 판명된 1640년 거창 심우사 목조아미타불좌상, 1644년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삼존불좌상, 그리고 1645년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모두 얼굴과 신체의 묘사에서 원오의 진작인 익산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입상, 논산 쌍계사 목조삼방불좌상,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 반대로 청헌의 진작들인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약사불좌상, 진주 응석사 목조삼방불좌상 등과는 매우 유사한 표현이 발견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청허를 보조하여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들이 대부분 청헌파와 연관을 갖고 있던 조각승들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또한 불상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경산 선본사 아미타상은 몸체나 얼굴의 세부 표현이 심우사 아미타불상에서 경흥사 불상으로 변화하는 중간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선본사 아미타상은 이 두 불상의 중간에 위치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영어초록

    It was discovered, in a record associated with the construction of the Buddha image found in a wooden seated Buddha image enshrined at Gyeongheung-sa Temple in Gyeongsan, that Cheongheo was a monk-sculptor from Geumsan-sa Temple in Gimje.
    According to this record, Cheongheo worked as a sculptor from 1605 until 1645. His life as a sculptor can be divided into two distinct periods: his time as an apprentice and his time as a master. It appears that he served as an apprentice under the Wono School of monk-sculptors, which included Wono and Gakmin, between 1605 and 1622, and that he was active as a master monk-sculptor together with apprentices of the Cheongheon School during the period 1640-45. However, there are no records of his activities for the eighteen years between 1622 and 1640.
    Cheongheo worked together with monk-sculptors of the Cheongheon School as a master monk-sculptor, although he took part in the production of Buddha images by the Wono School while he was an apprentice. He made Buddha images in the style of the Cheongheon School rather than in that of the Wono School.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monk-sculptors who followed a path similar to that taken by Cheonheon were exceptions rather than the rule.
    Extraordinary examples of such monk-sculptors include the monk Dou from the Muyeom School, who made Buddha images together with apprentices of the Huijang School, or the monk Haengsa from the Wono School, who made Buddha images together with monk-sculptors of the Muyeom School while training them as apprentices.
    No Buddha images made by members of the Wono School in the 1640s, when Cheongheo was in his most active phase as a master monk-sculptor, have been found.
    Judging from that fact, the Wono School might have lost its influence on the production of Buddha images. The facts can be confirmed by examining records left inside Buddha images and by comparing the style of Buddha image produced by the Wono School with that of the Cheongheon School. The Buddha images made by Cheongheo are quite different from those made by Wono in terms of their facial and bodily expression, but are quite similar to those made by Cheongheon. Such a result is thought to be attributable to the fact that most of the monk-sculptors who engaged in the production of Buddha images as apprentices of Cheongheo were associated with the Cheongheon School.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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