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靑銅숟가락의 登場과 擴散 - 三國時代~統一新羅時代 - (Appearance Diffusion of the Bronge Spoon - Three Kingdoms~Unified Silla -)

110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5.28 최종저작일 2008.09
110P 미리보기
靑銅숟가락의 登場과 擴散 - 三國時代~統一新羅時代 -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수록지 정보 : 석당논총 / 42호 / 271 ~ 380페이지
    · 저자명 : 정의도

    초록

    청동숟가락이 출토되는 삼국시대 유적은 신라는 금관총과 황남대총과 같은 분묘로 한정되지만 백제는 무령왕릉과 신봉동고분, 표정리고분 등의 분묘와 부소산 관북리 추정 왕궁지, 왕흥사지 사리장엄구 등으로 좀 더 다양하고 형태도 세련되어 있다.
    백제의 숟가락은 왕의 궁궐과 무덤, 왕이 죽은 왕자를 위한 사찰과 귀족들의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어서 청동숟가락의 사용주체가 누구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신라와 백제의 차이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수구적이었던 신라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려던 백제의 의도적인 국제화에서 비롯된 차이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백제의 숟가락이 실제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신라의 숟가락과 국자는 의례용으로만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경향은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3점의 은제국자가 비실용적인 반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3점의 숟가락은 북위의 숟가락과 비교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고 오히려 세련된 젓가락까지 더하여 출토되어 당시 백제의 문화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지역에서 출토된 숟가락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안악3호분의 부엌을 그린 벽화에서 국자가 보이고 있기 때문에 발견 가능성은 없지 않다. 그러나 4세기말 축조된 각저총에 밥상을 차려놓은 그림이 있는데 아무런 식도구가 그려져 있지 않고 무용총에도 음식을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부엌에서는 분명히 국자를 그리고 있는데 식탁에 숟가락을 그리지 않은 것은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다. 신라의 수많은 고분유물 가운데 아직까지는 도제 숟가락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신라와 이 시기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고구려에서도 숟가락이 출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특히 다량의 목제유물이 출토된 광주 신창동과 경산 임당동의 저습지유적에서 목제 주걱이나 국자는 발견되고 있으나 목제 숟가락이나 젓가락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차후 식생활과 관련지어 구명하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통일신라에 들어서면 삼국시대의 상황과는 달리 경주지역을 비롯하여 대구, 창녕, 구례, 부여, 당진, 이천, 서울 등 가히 전국에서 숟가락이 발견된다. 경주안압지 출토 숟가락은 신라왕실의 숟가락 사용을 보여주는 것으로 거의 똑 같은 것이 일본 정창원에도 보관되어 있어 정창원 숟가락은 신라에서 제작된 것임을 바로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안압지를 비롯한 경주지역에서 젓가락의 출토 예는 아주 드물어 젓가락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지역에서 출토되는 숟가락 가운데 월성과 분황사에서 출토되는 것은 당시 왕실이나 왕실의 비호를 받던 불교 사찰에서 사용하던 것이며 왕경유적 출토 숟가락은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서 경주에서부터 청동숟가락의 사용이 점점 확대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비하여 청동숟가락의 출토량이 훨씬 적었고 사용목적도 의례용에 한정되었던 신라가 어떠한 사정으로 숟가락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선 신라가 당나라의 조력으로 삼국을 통일한 다음 당과의 교류를 증대하면서 당시 당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던 화려한 금은기의 영향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청동숟가락의 사용이 점차 확산되어 갔다고 추정해 두기로 한다.
    청동숟가락의 점진적인 확산은 대구칠곡유적에서 의례용으로 출토된 숟가락과 젓가락에서 증명되는데 삼국시대 신라에서 제례용으로 쓰던 숟가락의 전통은 감은사나 화엄사 사리장엄구에 숟가락이 포함되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며 부소산에서 출토된 숟가락이나 황해도 평산군 평산면 산성리에서 출토된 일괄유물도 모두 제사용 도구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창녕 말흘리 퇴장유구에서 발견된 숟가락이나 국자, 당진 삼웅리, 한우물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의 청동숟가락은 청동숟가락의 사용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사찰과 관아라고 하는 사용계층의 한계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서울 호암산성 한우물유적의 제2우물지에서 출토된 숟가락은 그 형식이 안압지에서 출토된 형식을 계승하는 것으로 지방의 관리들이 사용하였던 실물이라고 생각된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청동숟가락은 상당히 귀한 것이었으므로 벼슬과 이름을 새겨 사용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청동숟가락의 두가지 성격이 결국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금나라와 요나라등 북방의 영향과 결합하면서 무덤의 부장품으로 선택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영어초록

    Three Kingdoms Sites where produced bronze spoon are limited to the tomb sites such as Geumgwan and Hwangnam Great Tombs of Silla Period. In the mean time, Baekje seemed to have rather various sites including Tomb of King Muryeong and Sinbongdong and Pyojeongri tomb sites and also areas of presumable Gwanbukri palace site, Sarira utilities from Wangheung temple. Bronze spoons of Baekje show clear evidence of the user and also generally they are more beautiful than other spoons from Silla. The difference between Silla and Baekje can be found from the intentional globalisation of Baekje where tried to defend themselves from the war between Silla and Goguryeo. Additionally spoons of Baekje could be used in everyday life while it is assumed that Silla spoons were only used for the ceremonial purposes. It is then proved by the spoons from Hwangnam Great Tomb and Tomb of King Muryeong. The former three silver spoons were all for the ceremony whereas the later ones were well refined and practically usable compared to Northern Wee Kingdom of China and so it is possible to say that those spoons were all well reflected great culture of Baekje. There are no Goguryeo spoons found so far but there is a painting of scoop in the mural of Anak No 3. Tomb, so I am looking forward to finding Goguryeo spoons in the near future. However, it should be highlighted here that there were no ceramic spoons found ever from sites of Silla and Goguryeo, given that there are number of cases of those spoons from China.
    Since the Unified Silla, all areas in Korea such as Daegu, Changnyeong, Gurye, Buyeo, Dangjin, Icheon, and Seoul produced bronze spoons. Particularly the spoon from Anapji in Gyeongju is the one for the royal Silla Kingdom and also it is exactly the same with the spoon in the Jeongchang Temple, Japan. Therefore the spoon from Anapji proved that the one in Japan was actually made in Silla most likely. Interestingly there is no archaeological findings of chopsticks in Gyeongju areas so it can be concluded that people in those days were rarely used chopsticks. The spoons from Gyeongju areas, particularly from Weolseong and Bunhwang Temple are for the Royal Family or Royal Temple. So it is possible that the tendency of the spoon findings from the temple and palace shows that spoons were generally used for everyday life in those days.
    Diffusion of the bronze spoons can be detected since Unified Silla tried to increase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 with Tang(唐) China after their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It is generally believed that Unified Silla influenced from the culture of Gold and Silver of Dang China and this made the diffusion of the bronze spoon in Unified Silla when Hanhwa policy (mimic Chinese culture) of King Gyeongdeok overhauled in the middle of 8th century. Increase of usages is also proved by ceremonial spoon and chopsticks found from Daegu Chilgok site.
    Ceremonial spoons from Silla could be a reason of spoons finding in Sarira utilities of Hwaeum Temple and Gameun Temple. Then it is highly likely that spoons from Busosan and burial goods of Pyeongsangun, Hwanghaedo are all divided into ceremonial tools. Hoard goods of Malheulri, Changnyeong, which include dipper and spoon, and bronze spoon of Unified Silla from Samungri, Dangjin suggest that spoon usages were diffused into the local areas and also users may have a certain class identification. And also spoon found from the 2nd well of Hoam fortress, Seoul has a unique type which is dedicated to the one from Anapji, and it can be presumed that local officials were practically used this spoon.
    In Goryeo period, these two characteristics of bronze spoons were finally met with the culture of Jin(金) and Liao(遼) Kingdoms of China and then they were chosen for the burial goods in the tombs.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석당논총”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 전문가요청 배너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12월 02일 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06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