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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대 경연의 운영과 그 정치적 의미 - 召對·別講을 중심으로 (A Study on Royal Lecture of King Sunjo(1800~1834) and its Political Meaning - with a focus on Sodae and Byeol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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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28 최종저작일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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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대 경연의 운영과 그 정치적 의미 - 召對·別講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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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조선시대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조선시대사학보 / 100호 / 283 ~ 329페이지
    · 저자명 : 황유나

    초록

    경연제도는 朝講․晝講․夕講의 法講과 召對․夜對의 兩對로 구성되어 국왕이 신료들과 經史의 학문적 토론과 정치적 사안에 대한 논의를 수행한 교육과 정치의 장이었다. 조선시대 국왕들은 법강을 중심으로 경연을 실시하였는데 그와 달리 순조는 소대, 또 새롭게 제도화한 별강을 중심으로 경연을 운영했다. 소대와 별강은 제도의 시행이 온전히 국왕의 의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므로 국왕의 통치 의지, 통치 행위의 수준이나 상태를 단적으로 파악하는 척도로 활용할 수 있다.
    순조의 경연 운영은 시기에 따라 활용 방식의 차이가 상당했다. 1804년 친정을 시작한 이후 1812년까지 순조가 보여준 경연 운영은 유교적 통치이념에서 강조하는 이상적인 운영상에 부합하는 방식이었다. 국왕은 정무를 보지 않는 시간에도 수시로 近侍를 불러 질문하고 논쟁하여[發問論難] 신료와 자신의 정견을 확인하고 그를 국정운영에 반영하였다. 특히 소대와 야대를 주로 활용하여 국왕과 신료 간의 거리를 좁혔고 그 과정에서 개별 신료의 성향을 파악하고 발탁하여 정치적 성장을 보조하기도 했다. 탕평의 기치를 명시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으나 간헐적으로 내비치는 계술의 의지와 구체적 행위로 볼 때, 탕평을 내세웠던 선왕의 뜻과 통치를 이어 국정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데 순조의 본의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1813년부터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하기 전인 1826년까지의 경연 운영은 조선 후기 경연 운영의 맥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양상이었다. 순조는 특히 1818년부터 소대와 별강을 활용하여 하루에 여러 차례 조정 내 신료들과 대면하면서 권력의 누수를 막고 국왕을 보좌하는 신료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는 정치권력이 김조순의 노론 북당을 중심으로 한 세력에 편중되는 상황에서, 흔들리는 통치 기조를 정비하고 권력 구도의 변화를 연착륙시키기 위한 대응으로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다만 당시의 소대와 별강 운영에서 경연제도가 본래 가진 修己적 성격과 군신 간 논의의 장으로서의 성격은 크게 약화되었다. 이 점 때문에 후반기 소대와 별강의 운영은 공허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순조는 1821년 초까지 1,100회가 넘는 소대와 별강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였다. 순조는 소대와 별강에서 수시로 公事를 처리해 機務가 적체되지 않도록 하고, 당대 주요 벌열 가문의 자제를 불러들여 忠良한 신료의 역할을 강조하고 기강을 확립하려는 한편 정치권력의 핵심에서 소외된 정파의 인사들을 소대와 별강에 꾸준히 참여하게 하여 신료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국왕에 진달하는 창구로 삼았다.

    영어초록

    Gyeongyeon (經筵) system was composed of Beopgang (法講, the lectures on law) and Yangdae (兩對, two meetings). The previous kings had put Beopgang at the center of this system, while King Sunjo mainly made use of Yangdae, which consisted of Sodae (召對, Nonscheduled Meeting) and Yadae (夜對, Night Meeting), and Byeolgang (別講, Special Lecture). Byeolgang is a royal tutoring system that extended and improved Sodae and was developed in 1811 (11th year of Sunjo). Sodae and Byeolgang could be convened and conducted at any time he wished to. Also, he could summon any bureaucrat, no matter whether the bureaucrat was an official counselor or not. Accordingly, Sodae could work as a place where King Sunjo accepted more extensive political opinions and had a chance to examine whether a bureaucrat would fit in a certain governmental position.
    Through Sodae, King Sunjo evaluated the participants’ competency in order to extend his pool of talents. Moreover, he had the participants give lectures on Kukjobogam (國朝寶鑑), which explained the great achievements of the previous kings, in order to tackle the abuses of government and create a plan for his administration. All these steps were intended to inherit the Tangpyeong (蕩平) politics of King Youngjo and King Jeongjo.
    In 1817 (17th year of Sunjo), the death of Park Jongkyeong from Bannam Park Clan changed the political terrain where Kim Josun from Andong Kim Clan began to consolidate the hegemony. Hence, King Sunjo sought a role as a mediator to set a balance of power between the Sedo families by means of Sodae and Byeolgang. He had the bureaucrats, whom he had selected through Sodae, participate in the lectures in the same ways as before. Additionally, he unexpectedly summoned the young bureaucrats from Gyeonghwasajok (京華士族), whom he expected to form a future power group comparable to Andong Kim Clan, and had them give a lecture in the presence of the King. King Sunjo selected topics from the lecture literature which was chosen on a daily basis from the books edited and compiled by King Jeongjo. Because King Jeongjo envisaged a king(君) as a teacher(師), these selections implied King Sunjo’s political aim to reinforce his authority as a king. In addition, the state affairs were often discussed and resolved in Sodae and Byeolgang; convened several times a day, their importance in governmental decision-making increased.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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