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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사의 역사적 추이와 가람배치 (Historical Transition and Garam arrangement of Suguk-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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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27 최종저작일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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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사의 역사적 추이와 가람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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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수록지 정보 : 강좌미술사 / 30호 / 285 ~ 319페이지
    · 저자명 : 손신영

    초록

    守國寺는 1900년 현 위치에 세워졌지만 세조 조부터 조선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전통사찰이다. 그러나 현재 경내에는 이를 입증할 만한 불전은 한 동도 남아 있지 않다. 현 위치에 들어설 당시 세워졌던 大雄殿과 大房 등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존재했지만 1988년 입안된 ‘봉산자연공원 계획안’에 따라 1990년대 중반 들어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문헌을 통해 수국사의 역사적 추이를 살펴본 결과, 수국사가 조선전기 창건된 正因寺의 後身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오릉의 능침사찰 역할을 조선
    전기에는 정인사가, 조선후기 들어서는 수국사가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인사에서 수국사로 寺名이 바뀌는 뚜렷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서오릉이 조선왕실의 陵地로 자리매김 되기 시작한 것은 세조대의 의경세자 능인 경릉이 조성되면서 부터인데, 이 때 능침수호사찰로 정인사가 창건된 것이다. 예종의 死後 그의 능인 창릉이 인근에 조성되자 정인사는 크게 중창되면서 경릉과 창릉의 능침수호사찰이 되었다. 이후 정인사는 명실상부한 왕실원찰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유생들에게 있어서는 도성에서 가까운 독서처로 인식되어 출입이 잦았던 곳임을 당시 활약한 유학자들의 문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들어서면 17세기까지는 정인사라는 이름의 기록이 보이지만 18세기 들어서면 서오능 인근 사찰로 수국사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써 이능화선생이 “정인사는 뒤에 수국사가 되었다”고 한 조선불교통사의 내용을 확인하면서, 조선전기 정인사의 역할을 조선후기 들어 수국사가 계승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가람배치에 대해서는 조선전기와 조선말기로 나눈 후, 조선전기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추론했다. 하나는 김수온이 쓴 「正因寺重創記」 를 통해 동 시기 능침사찰인 봉선사와 유사한 조선전기의 일반적인 능침사찰 배치형식이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화엄대사 설준이 설계를 맡았다는 것을 감안하여 당대의 화엄계 사찰인 원각사의 배치를통해 추론해 본 것이다. 능침사찰로서의 배치와 화엄계사찰로서의 배치는 주불전의 명칭과 탑의 유무로 달라질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중심축을 따라 좌우대칭으로 건물이 배치된다는 점이 같아 보인다. 따라서 중창당시 정인사의 119칸 당우는 주불전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고 탑은 노사신의 시를 통해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보았다. 조선후기 수국사의 가람배치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고, 조선말기는 1900년 건립당시 지어진 불전의 이름과 당시 모습을 간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통해 추론해 보았다. 주불전 맞은편에 대방이 배치되는,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에 성행했던 배치형식이 수국사에도 적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이 수국사는 억불의 조선사회에서 왕실에 의해 개창되어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浮沈은 겪었지만 조선왕실의 지원과 관심 속에 존재했던 서울경기지역 사찰의 존재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영어초록

    Suguk-temple was built in present place in 1900, but it was a traditional Buddhist temple which had a close connection with Choseon Royal House. However, there was no Buddhist sanctum which could prove it in the precincts of a shrine now.Daeungjeon(the main Building), Daebang and so on are planning to build at present site. These buildings existed after Korean War but pulled down in the mid in 1990 in accordance with ' Bongsan natural park plan' drawn in 1988. We could know the fact Suguk-temple inherited from Jeongin-temple if we see the historical transition of Suguk-temple through the literatures. Jeongin-temple undertook the role of Nung -Chim-temple of Seo-o royal mansoleum(tomb) in the first term of Choseon Dynasty. However, there is no clear reason why the name of temple changed Jeonginsa into Suguk-temple. Seo-o reung began to use the royal tomb of Choseon Dynasty when the tomb of Uikyeong Crown Prince, Kyeongreung, were created. At that time Jeongin-temple was built as neungchimsuhosachal. Jeongin-temple was greatly rebuilt since the neungchimsuhosachal such as Changreung, Yejong's tomb, was constructed. From now on Jeongin-temple became a famous temple of Royal House. However confucian thought Jeongin -temple was a just reading place near castle town through the literatures. We can find the record of the name of Jeongin-temple by theseventeen century but there is the name of Suguk-temple as the near temple of Seo-oreung in 18th C. Garam arrangement was greatly divided the first term of Choseon into the later Choseon and the first term of Choseon was divided as two things. First through 「Jeonginsa-jungchang-gi」 written by Kim su-on we could infer Jeongin-temple was Garam arrangement shape of the first term of Choseon. Second we also infer that through the arrangement of Wonkak-temple, hwaeomsachal, the arrangement neungchimsachal and hwaeomsachal could alter the name of Jubulje on and the existence of Pagoda. However, generally it is the same that the left and right symmetry construction was arranged according to the central axis. Therefore 119 kan buildings of Jeongin-temple were arranged as the left and right symmetry as the center of Jubuljeon and Pagoda was created through the poem. There were no data that might presume the Garam arrangement of Suguk-temple in the later of Choseon. However, we could infer Garam arrangement was more or less popular through the pictures written the name of Buddihist temple in the late Choseon Dynasty. As mentioned above Suguk-temple was constructed by Choseon Royal Family and has well shown us the features of many temples of Seoul-Kyeonggi province which existed in support and concern of Royal Famil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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