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개화운동의 정치사적 의미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학학회
· 수록지 정보 : 동학학보 / 7호 / 63 ~ 93페이지
· 저자명 : 김정인

초록

동학은 18세기 이래 ‘조선적 문화’의 발달을 기반으로 향반鄕班인 최제우가 종교적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창도한 도학道學이었다. 또한 동학은 민심 동요와 서세 동점의 대내외적 위기를 우리의 도道·우리의 학學으로 극복하려는 ‘동도주의東道主義’에 기반한 자주적 근대화 운동이었다. 동학농민전쟁 이후 동학은 영학당·활빈당 등을 통해 반외세 민족 운동 노선을 고수하는 남접南接과 서북에서의 조직 재건과 문명개화론의 수용을 통해 근대화·문명화에 매진하는 북접北接으로 분화되었다. 북접 지도자 손병희는 문명개화파와 연계해 정치 투쟁의 일환으로 1904년 독립협회獨立協會의 민회운동民會運動을 도입해 동학교도로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하고 경향 각지에서 시위 운동, 즉 갑진개화운동을 전개했다.
진보회를 통한 민회 운동은 자주화와 근대화를 겸비한 그야말로 지난한 국가 개혁을 지향하던 대한제국 정부에 대해 서구적 근대·선진·문명을 지향하는 종속적 근대화 노선으로의 전환을 촉구했던 반정부 투쟁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진보회의 시위 운동은 그들을 개화開化한 ‘동학당東學黨’·‘동학여당東學餘黨’·‘동학비적東學匪賊’으로 파악하며 위험시하는 정부의 일관된 강경 탄압으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또한 문명개화文明開化를 상징하는 진보회원의 흑의단발黑衣斷髮은 민회 운동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진보회의 활동 중 주목할 것은 그들이 일본 동맹론에 입각하여 일본군을 ‘보조’할 것을 주창하고 실천한 사실이다. 진보회의 일본 동맹론과 그 실천 활동을 방조한 단체가 바로 일진회一進會였다. 일진회와 진보회는 정부의 탄압으로 시위 운동이 점차 위축되어 가자 1904년 12월 공식 합병했다.
동학·천도교의 정치적 동향에서 볼 때, 갑진개화운동은 동학의 주류가 문명개화 노선으로의 방향 전환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직접적인 정치 투쟁을 통해 동학의 합법화와 함께 본격적인 정치 세력화를 도모한 민회 운동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부강한 문명 국가 건설을 목표로 그들은 대의제의 실현, 지방 자치제의 실시와 같은 제도 개혁과 천거제의 폐지, 인물 교체론과 같은 인사 개혁을 요구하는 정치 투쟁을 전개했다.
1905년 천도교 창건 이후 정치 활동의 지향은 분명했다. 손병희, 오세창, 권동진으로 대표되는 문명개화파는 합병론合邦論을 추구하는 일진회파一進會派를 출교시키고 대한협회大韓協會에 참여해 보호국 체제하에서의 정권 획득을 도모했다. 그들은 일본의 명치유신을 모델로 자본주의화·입헌적 정치 체제를 달성하여 부국 강병을 꾀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과정을 ‘문명개화’로 이해하는 전형적인 문명개화론자들이었다. 그들은 1905년의 국권 상실은 실력 부족에 기인한 것이므로 실력 양성이 곧 국권 회복의 첩경이라고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민중 계몽을 통한 실력 양성을 일차적인 과제로 설정하고 언론과 교육을 통한 문화 계몽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것은 동학이 추진했던 ‘동도주의적=자주적 문화 계몽 운동’과는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도교 정치 투쟁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들의 정치 개혁 요구는 일본에 의해 자행된 강제 병합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망국민亡國民에게는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