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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天国与东学运动比较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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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6 최종저작일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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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天国与东学运动比较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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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학학회
    · 수록지 정보 : 동학학보 / 28호 / 91 ~ 142페이지
    · 저자명 : 최지청

    초록

    1840년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하고 불평등한 남경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열강의 반식민상태로 전락한 청 왕조는 전쟁 부담금 등을 백성에게 전가시켜 사회혼란을 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1850부터 1864년까지 태평천국의 봉기가 발생했다. 이 기간 중국은 제2차 아편전쟁(1858~1860)을 겪었다. 이 전쟁은 조선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동학의 창립자 崔濟愚는 전통 이념을 초월하여 輔國安民의 道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東學을 창립하였다. 태평천국과 동학은 모두 19세기 후반에 발생했으며, 공통의 정치배경 및 사회경제 환경을 갖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이상과 목표를 제시하고, 정치 사회경제에 관한 제도와 정책을 선포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홍수전의 미래 이상사회 구상은 두 가지 사상에서 출발한다. 그 하나는 유학의 민본과 대동사상이다. 다른 하나는 원시 기독교의 平均·평등이념과 공산제도이다. 태평천국이 구상한 미래의 이상사회 목표는 “天下一家, 共享太平”의 지상천국 건설이었다. 동학은 30여 년 동안 이상사회 설계에 치중하면서 종교와 의식형태 및 도덕규범을 변화시켜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다. 동학은 교화를 통해 이상사회 목표를 제시하고자 했을 뿐 새 왕조를 창건할 뜻은 없었다.
    태평천국과 동학은 모두 현실사회의 불평등과 不義를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당시 사회에 만연한 종교와 의식형태를 부정했다. 최제우가 창시한 ‘人乃天’ 의 명제는 새로운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인내천’ 사상은 ‘天’과 ‘人’의 一體를 주장하여 ‘人’의 지위를 ‘天’의 숭고한 위치로 끌어올려 천인합일을 천인평등으로 변화시켰다. 때문에 동학은 天命觀과 宿命論을 부정했다. 그것이 평등사상을 구축하고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기본 논리가 되었다. ‘人乃天’의 명제는 홍수전이 고취한 “總之貧富天排定” “富貴在天生死命” 비교할 때 훨씬 진보적이고 평등적이며 인문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동학이 구상한 미래 이상사회의 목표는 태평천국과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동학은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사람 사이의 평등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태평천국은 등급제도와 세습제도를 유지하면서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으며, 경제와 민생의 평균을 더 강조했다. 태평천국은 세상 사람들은 上帝의 자녀이며 上帝 앞에서 사람마다 평등하다는 것으로서 이것은 즉 종교적 평등이며, 사회적·정치적 평등은 아니다. 동학의 평등관은 더욱 더 근대적 의의를 갖고 있다.
    近期 목표를 보면, 홍수전은 ‘反满興漢’을 실현하기 위해서 먼저 배상제교를 추진하는 것이고, 동학은 비폭력의 ‘宗敎濟世’의 평화적 방법을 견지하며, 근기 목표는 ‘輔國安民’이다. 동학의 근기 목표와 미래의 이상 목표는 지속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輔國安民’은 체제 내 변혁을 추구하며 그 목표는 동학 교의와 의식형태로 민중을 교화하는 것이다. 동학은 봉기 이후 여러 차례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하여 조정과 관청, 사회와 민중 사이에 긴장 관계를 조정하려고 했다. 동학은 조선 정부에 점차 폐정을 개혁하고 특권을 제거하여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변화시켜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태평천국의 근기 목표는 새로운 왕조를 창립하는 것이었다. 법리적 측면에서 보면, 태평천국은 중앙집권의 왕조체제를 실시했다. 홍수전은 하나님의 次子로서 천하를 통치하는 최고의 통치권자였다. 天朝는 역대 왕조의 중앙 집권체제와 군주 전제체제를 그대로 답습한, 즉 참신한 제도라고 볼 수 없다. 태평천국의 지방 통치는 省·郡·縣 3급제로 하여 천왕이 그 장관을 임명하는 軍政合一의 정치이다.
    全州和議 이후 관할구역의 자치권을 승인하자 동학은 곧 조선의 제도를 따르기로 했다. 관할구역의 통치는 二元化 특징을 보이는데 첫째, 관할구역은 동학과 지방관에 의해 共治되며, 둘째, 기층의 통치는 동학의 自治에 두고 있다. 제도면에서 보면, 조정에서는 金鶴鎭을 東學 관할 구역의 감사로 임명하고, 金星圭는 從事官이 되어 조정과 동학이 공동으로 통치했다. 기층 행정기구의 面과 里의 執綱所는 동학이 自治하며, “執綱은 지방 농민이 선발하며 지방관청과 협력하여 질서를 회복한다.” 執綱의 民選은 당시의 신분제도를 뛰어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태평천국의 제도와 비교해 보면 동학은 체제, 계층, 규모, 범위, 등에서 커다란 한계성을 보여 준다. 협약을 맺은 이후 동학은 농민 무장을 바로 해산하고 조정과 협력하여 통치질서를 회복하며 관할 구역을 함께 관리한다. 하지만 조정과 동학은 서로의 믿음이 부족했다. 관할구역의 共治와 기층의 자치는 단지 조정이 제출한 잠정적 타협안과 양보에 의한 것이었다. 때문에 동학의 관할구역 정책은 불확실하고 지속성을 견지하지 못했다.
    홍수전의 天王制 구상은 태평천국 전기 楊秀清과 蕭朝贵의 도전을 받았다. 양수청과 소조귀는 각각 天父와 天兄을 대신하여 최고의 神權을 장악했다. 양수청이 홍수전을 압박하여 洪과 楊의 二元體制의 권력구도가 형성되었다. 권력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수청은 부단히 권력을 확장하고 天王과 諸王의 권한을 침해하여 정치가 불안정해져 갔다. 이로 인해 권력투쟁이 심화되어 天京事變이 발생했다. 양수청, 韋昌輝, 秦日綱 등이 잇따라 죽임을 당했고 石達開가 도망한 후 홍수전이 대권을 장악했다. 洪과 楊의 共治에서부터 태평천국 권력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천경사변 이후 諸王과 내부의 모순이 심화되어 결국 천국의 멸망을 초래했다.
    동학은 태평천국이 왕조를 건립하고 권력을 창출한 것과 다르다. 동학은 ‘辅国安民’을 추구하여 평화적으로 傳敎하여 敎勢를 확장하고 조정과 협력을 추구했다. 동학은 백성을 보호하고 敎主의 伸寃運動을 통해 조정으로부터 합법적인 지위를 획득하고자 했다. 동학과 태평천국은 모두 관군과 외세에 의해 진압 당하지만 내부 분열이 주요 실패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동학과 태평천국의 이상과 제도 실천에 대해 비교해 보면, 兩者는 처음 제시한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다. 태평천국의 이상적인 제도인 《천조전무제도》중에 규정한 평균주의 제도와 정책은 실행되지 못했다. 태평천국이 추진한 제도는 현실의 정치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심지어 일부는 반대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동학이 구현하고자 한 평등사회는 잠시 보국안민의 실천에 머무르다가 마침내 국내외 적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홍수전과 최제우, 全琫準 등은 모두 기층 출신으로 전통적 봉건사회에서 성장하여 기본적으로 유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후 새 종교를 창립했는데 그 세계관을 보면 唯心論의 범주에 속한다. 태평천국과 동학의 지도자들은 모두 이원론적 오류에 빠졌다. 그들의 이상사회 구상은 현실사회의 위기를 관찰하고 思考하는 것에서 출발했으나 종교적 세계관이 주도하고 있다. 인식론의 편차와 오류는 동학과 태평천국이 제시한 이상과 제도, 실천 사이에 괴리가 생긴 주요 원인이다홍수전은 유학 교육을 받은 인물로 그가 설계한 이상 사회의 모델과 구상은 중국 전통의 왕조체제의 기본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목표가 왕조체제의 수립이었다. 태평천국 조정의 명칭을 神朝, 天朝, 天國으로 했지만, 이는 근대적인 정치체제는 아니었다. 태평천국은 처음부터 멸망할 때까지 전쟁 환경에 있었다. 영토가 넓지 않았고, 관할지역 역시 청군의 침범을 당하여 안정되지 않았다. 때문에 평균주의 제도를 시행할 정치환경과 경제기초가 부족했다. 동학 역시 내란과 외환의 환경에 처해 있었다. 조정과 외국 침략세력은 동학의 가장 큰 위협세력이었다. 동학이 제시한 평등사회와 보국안민 정책에 대한 인식 역시 동학 내에서 차이점을 보였다.
    홍수전은 上帝의 아들인 자신이 상제의 명을 받아 세상을 다스린다고 했다. 홍수전은 天王의 자리에 올랐고, 그를 따르는 세력은 諸王의 자리를 차지하여 권력집단을 형성했다. 민중을 위한 제도와 정책은 空文으로 남아 시행되지 못했다. 동학은 오랫동안 비밀리에 활동했고, 起義 이후 관할 구역에 自治한 시간이 수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층분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동학교도 내의 평등을 유지했으나 일부 귀족집단과 儒生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분열 양상이 출현했다. 이러한 측면은 이상과 목표, 이상과 실천 사이에 차이가 나타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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