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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敬謨가 본 古都 平壤과 그 遺蹟 (Old Capital Pyeongyang and Its Historic Remains Viewed By Gyeong‐mo Hong)

2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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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2 최종저작일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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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敬謨가 본 古都 平壤과 그 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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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양한문학회
    · 수록지 정보 : 동양한문학연구 / 39권 / 39호 / 233 ~ 259페이지
    · 저자명 : 이군선

    초록

    이 논문은 조선 후기 사가적 성향을 지닌 홍경모의 평양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홍경모는 평양이 단군조선, 기자조선, 그리고 고구려의 고도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시대의 유적으로 내려오는 단군묘와 정전, 그리고 평양에 남아 있는 동명왕 관련 유적에 대하여는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내었다.
    홍경모는 단군묘에 대하여 『강동현지』에 “단군묘가 대박산 아래에 있다.”고 한 것은 강동사람들이 대박산을 태백산이라 부른 데에서 온 잘못이고, 『동국여지승람』의 기록도 『강동현지』의 내용을 따랐기 때문에 단군묘의 위치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기자가 조선에 문명을 전파한 인물로 평양에 도읍하였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평양에 남아있는 정전은 기자의 정전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 이유로 이미 맹자의 시대에 정전에 대하여 확인할 수 없었는데 평양에 정전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동명왕묘도 요동에 있지 평양에 있지 않으며, ‘동명’이라는 명칭도 고구려의 동명왕은 시호이고, 부여의 동명은 이름으로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평양에 남아 있는 동명왕 관련 유적은 지리적 역사적 사실과 합치되지 않으므로 견강부회한 것이라고 하여 합리성을 추구하였다.
    홍경모의 이러한 인식은 조선 후기의 학문적 경향에서 나온 것이며 그의 학문이 사가적 성향 특히 고증학적 태도를 지니는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study examined how Pyeongyang was viewed by Gyeong‐mo Hong who had a historian tendency as a scho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Gyeong‐mo Hong acknowledged that Pyeongyang was the old capital of Dan‐gun Joseon, Gija Joseon, and Koguryo, but was skeptical about historic remains from the ancient states such as the Tomb of Dan‐gun, the main hall of royal palace, and the historic remains related to King Dongmyeong in Pyeongyang.
    Concerning that Gangdong people were saying with regard to the Tomb of Dan‐gun, “The Tomb of Dan‐gun is at the foot of Mt. Daebak,” Gyeong‐mo Hong believed that Gangdong people confused Mt. Taebaek with Mt. Daebak, and Donggukyeojiseungram also misinformed the location of the Tomb of Dan‐gun because it relied on what was said in Gangdong.
    In addition, he admitted that Gija was the person who transmitted civilization to Joseon and set up the capital in Pyeongyang, but argued that the main hall of royal palace remaining in Pyeongyang was not from Gaja Joseon. As the reason, he mentioned that the existence of the main hall of royal palace could not be confirmed already in the days of Mencius and therefore it could not have a clear remain in Pyeongyang.
    Furthermore, he asserted that the Tomb of King Dongmyeong was not in Pyeongyang but in Liaodong, and ‘Dongmyeong’ was a posthumous title of Koguryo King Dongmyeong and was nothing to do with Dongmyeong in Buyeo. He also pursued rationality by saying that historic remains related to King Dongmyeong in Pyeongyang were not consistent with geographical and historical facts, and therefore their interpretations were distorted.
    It is believed that Gyeong‐mo Hong’s view as such came from academic trend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was out of his scholarship having a historian tendenc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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