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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으로의 강제동원: 조선인 지원병이 경험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 (Forced Mobilization to Battlefield: the Asian Pacific War Korean Volunteer Soldiers 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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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1 최종저작일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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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으로의 강제동원: 조선인 지원병이 경험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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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역사학연구 / 81호 / 97 ~ 120페이지
    · 저자명 : 안자코유카

    초록

    본고는 일본군 군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조선인 병사들을 주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중일전쟁의 전면화(1937년 7월)를 계기로 식민지배하의 조선인들에 대한 병력동원이 급작스럽게 결정된 이래, 일제의 패전까지 약 1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일본군에 동원되었다. 이 조선인 병사들의 전쟁경험은 동원시기나 방법, 배속군대에 따라 크게 달랐다. 조선인이 일본군으로 동원된 방법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대개 직업군인(장교), 지원병, 징병 등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중에서도 지원병은 징병보다 장기 종군을 하면서 가장 가혹한 전선(前線)으로 보내졌다. 그들 대부분은 조선군에 배속되었는데, 조선군 예하 보병연대의 주력부대는 전황이 일층 가혹해지고 있던 1943년 이후로 동부 뉴기니아 전선이나 필리핀 전선으로 전출되어 패전 때까지 계속 머물렀다.
    본고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전쟁기념관에 소장된 신자료를 통해 3인의 조선인 지원병의 경험을 분석하였다. 한 사람은 전사한 금광재면(金光載冕)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살아 돌아온 유기화(劉琦華)와 C(장병묵(張炳默)으로 추정)이다. 이 3인은 같은 조선군 제78연대에 소속되어 1943년에 뉴기니아 전선에 보내졌는데, 뉴기니아 전선에서 제78연대 병사의 생존률은 9%에 불과하였다. 金光載冕은 전투에서의 부상으로 입은 상처로 전사하였는데, 그가 소속했던 제1포병소대의 57명 가운데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유기화는 제2중대 소속으로 조선인 조장(曹長, 한국군의 ‘상사’에 해당)이었던바, 전후에는 한국전쟁때 한국군에 입대하였다가 1974년에 준장으로 제대하였다. 그가 남긴 구술기록에는 뉴기니아 전선의 비참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C는 오스트레일리아군의포로가 되어 심문기록을 남겼다. 이상의 3인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식량이 떨어져 인육을 먹기까지 한 뉴기니아 전선의 끔찍한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중, 일제의 패전 직전의 소련 국경 근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가 공습을 받는다든지 전쟁터가 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다. 많은 조선인에게 ‘전쟁체험’이라 하면 차라리 한국전쟁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지배민족인 일본인들 틈에 끼어 죽음 직면의 쓰라린 경험을 했던 조선인 지원병들은, 징병이나 노동력 강제동원 등의 동원 피해에 비해 주목을 받지 않았다. ‘지원’이라는 명칭으로부터 식민지하에서 일본에 대한 협력자라고 인식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후에는 ‘일본군에 지원한 매국노’로서의 친일파 딱지가 붙어 끊임없이 비판을 받았다. 또한 국적문제 때문에 일본정부의 전후보상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왔다. 조선인 지원병들은, 친일과 항일 사이의 깊은 골짜기로 추방된 존재였던 것이다. 한편, 류기화나 C 등 지원병의 경험과 전사한 전우들의 기념비의 일본 건립을 청원한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틀로 평가하거나 분석할 수 없다.

    영어초록

    This article explored Koreans as a member of Japanese Army in the second World War. More than 100,000 Koreans were mobilized from July 1937 when the Sino-Japanese War came to an all over to August 1945 when Japan was defeated. The war experiences of the Korean soldiers varied in the way how to mobilize them, their enlistment period and attached force. Korean soldiers were made up professional soldiers such as officers, volunteers and soldiers requisited by conscription. Among them, volunteers, were sent to the severest front; most of them were assigned in Japanese Army in Korea, and the main-forced units of an infantry regiment under the Army continuously stayed in the Eastern New Guinea front or Philippine front from 1943 to 1945.
    This article analyzed the experiences of three Korean volunteers with historical records kept in Australian War Memorial; They were Geumgwang-Myeonjae[金光載冕], Yu-Gihwa[劉琦華] and C assumed at Jang-Byeongmuk[張炳默]. These three volunteers were in the 78th regiment of Japanese Army in Korea and sent to the New Guinea front in 1943. Geumgwang died from a wound in the battle; just one of 57 soldiers in the 1st artillery which he belonged to was alive. Yu-Gihwa was affiliated with the 2nd company and a master sergeant; then, he joined the Korea military in the period of Korean War and was discharged as a brigadier general in 1974. He dictated deplorable conditions of the New Guinea front. C became the captive of Australian Army and remained his examination of a witness. From these three stories, we can understand the terrible conditions of the New Guinea front where people ate human flesh because of lack of food.
    Actualy, the Korean Peninsula was excluded from battlefield except some areas near Soviet Union’s border during the Asian Pacific War; therefore, war has meant the experiences of the Korean War to Koreans. Also, the war damage of Korean volunteers has less attracted attention than drafted soldiers and workers forced to labor; in addition, they have been sometimes considered as Japanese cooperators or ‘traitors to apply to join Japanese Army’. They were excluded from Japanese government compensation in postwar years because of the matter of their nationality, as well. Koreans volunteers have fallen into an abysmal ravine between pro-Japanese and anti-Japanese. However, we should be careful not to dichotomously judge the experiences of volunteers such as Yu-Gihwa and C and a petition for erecting a monument of died comrades in arms in Japan.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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