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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의 봉건적 주종관계 형성(2) - 카롤링왕조와 봉건적 주종관계의 제도적 성립 - (The Formation of Feudal Vassalage in Western Europe(2) - The Carolingians and Establishment of Vassalage as a Syst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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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26 최종저작일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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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의 봉건적 주종관계 형성(2) - 카롤링왕조와 봉건적 주종관계의 제도적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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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역사교육연구회
    · 수록지 정보 : 역사교육 / 116호 / 273 ~ 314페이지
    · 저자명 : 이기영

    초록

    필자는 몇 달 전에 서유럽에서 고대로부터 메로빙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주종관계 발전에 관한 논문을 쓴 바 있다.1)이 연구에 의하면 메로빙시대 전기에는 고대적 주종제도와 보호관계가 서유럽의 많은 곳에서 존속하고 다방면으로 확산되었다. 메로빙시대 후기에는 恩貸地(beneficium) 창출의 儀式이 생겨나고, 武裝從士의 군사봉사에 대해 토지가 수여되며, 무엇보다 메로빙 왕실의 宮宰들이 교회기관들로부터 탈취한 많은 토지를 기병의 군사봉사와 결합시켜 참다운 의미의 봉토와 봉신을 탄생시키는 등 봉건적 주종관계의 골격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로써 봉건적 주종제도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봉주와 봉신의 권리의무관계에서 충성과 군사봉사에 대한 은대지 수여라는 기본적인 의무 외에는 10세기 이후 ‘고전적’인 형태의 봉건적 주종제도에서 볼 수 있는 여타의 중요한 의무들이 보이지 않으며, 봉건적 주종관계를 체결하는 의식절차도 은대지 수여의식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규모의 은대지 수여를 통한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도 궁재와 그의 신하와의 관계를 넘어선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도 메로빙시대 말에 이르러 카롤링왕조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메로빙조적 현상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이처럼 메로빙시대 말에 가서야 겨우 봉건적 주종제도의 기본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한 상황에서 봉건적 주종제도의 전체적 형성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카롤링시대를 살펴봄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카롤링시대의 봉건적 주종관계 형성 문제는 근래 학계에서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이른바 ‘봉건혁명론’을 주장하는 폴리 및 부르나즐과 같은 연구자들은 11세기 이전에 봉신제, 은대지, 충성서약 등과 같은 봉건적 주종관계의 요소들이 존재했으나, 아직 봉건적인 주종관계가 지배적인 구조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가족이 봉건적 주종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봉건혁명론자들은 그나마 카롤링시대에 봉건적 관계가 어느 정도 존재했다고 보는 편이지만, 브라운 및 레널드즈와 같은 봉건제 허구론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연구자들은 12세기 이전에 대해서는 봉건적 주종관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이들은 ‘봉건적’ 또는 ‘봉건제’라는 말과 봉건제와 관련된 여러 설들은 중세와 근대의 전문 법률가들이 순전히 이론적으로 고안해낸 구성물이기 때문에 완전히 폐기되어야 하며, 12세기 이전에는 봉건적 주종제나 봉토에 관한 결정적이거나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한다.
    카롤링시대와 관련하여 봉건혁명론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봉건적 주종관계가 제도적으로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기보다 사회의 구조와 체제를 구성할 만큼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는 것인데 비해, 봉건제 허구론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요지는 보급은커녕 제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간단치 않다. 그래서 필자는 카롤링시대의 봉건적 주종관계 형성문제를 제도적 성립 측면과 확산 측면으로 나눠 살펴보고자 한다. 이 두 측면 중 후자의 확산 문제는 다음의 다른 논문에서 고찰하도록 하고 이 논문에서는 전자의 제도적 성립 측면을 검토하도록 하겠다. 여기서 봉건적 주종관계의 제도적 성립이란 전체 사회의 체제로서 확립된다는 것이 아니라, 10세기 이후에 보는 봉건적 주종관계의 주요 구성요소들이 생성되고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일관된 체계를 이룬다는 뜻이다. 카롤링시대의 봉건적 주종관계의 형성문제는 논란이 많은 만큼, 필자는 제한된 지면이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당대의 사료를 면밀히 분석하여 그 형성실태를 살펴보겠다.
    봉건적 주종관계는 봉주와 봉신의 권리의무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건적 주종관계의 ‘고전적’ 개화기로 알려진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봉주에 대한 봉신의 의무는 충성, 군사봉사, 조언, 扶助 등이었다. 봉신에 대한 봉주의 의무는 보호, 부양, 성실, 조언 등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여러 의무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고 근간을 이루는 의무는 봉신에게는 騎士로서의 군사봉사였고, 봉주에게는 봉토수여에 의한 봉신의 부양이었다. 기본적으로 폭력과 농경 중심의 자연경제가 지배하는 중세 봉건사회에서 봉주와 봉신 사이에 서로 절실히 필요로 한 것은 군사봉사와 봉토수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롤링시대에 주로 ‘은대지’로 표기된 봉토의 수여와 기사로서의 군사봉사가 봉건적 주종관계에서 기본적 의무관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봉건적 주종관계는 臣從誓約을 비롯한 일련의 체결의식을 통해 결성된다. 봉건적 주종관계는 이런 여러 의무관계와 체결의식으로 구성됨을 고려하여, 다음에서는 봉건적 주종제도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서도 기본적인 의무관계와 기타 요소들로 구분하여 그 형성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영어초록

    The analysis of the early medieval documents shows evidently that the important institutions of vassalage in western Europe was established until the early 9th century mainly on the initiative of Charlemagne. In the first place, the feudal axis of vassalage came into existence through the combination of military service as a knight and ‘beneficium’. Second, the obligations of protection and faithfulness which lord owed to his vassal were definitely prescribed. Third, we can see the obligations of fidelity and consultation which vassal owed to his lord were practised. Only vassal’s aid obligation to his lord didn’t appear in recorded sources. But we can’t suppose that there was not actually such a practice, because documentary sources were scarce and aid was above all a sign of sincerity given in such a special occasion as lord’s participation in crusade or wedding of his daughter.
    Besides, as we see in a formation of vassalage between Pippin, a Carolingian first king and Tassilo, the duke of Bavaria in 757, ceremony forming feudal vassalage also was established just at the opening of the Carolingian dynasty. It consisted of homage ceremony putting a man’s hands in another’s hands and a Christian ceremony taking an oath of fealty with a hand touching saint’s relics. In this time cavalry was armed with a coat of mail, helmet, lance, sword, bow and arrow and so on. This equipment was nearly on the same level with that of chivalrous heyday since 11th century. And what a man became a vassal armed with a riding horse and armament was honorary. Lastly, a kind of chivalrous culture such as tournament and hunting was too formed or forming.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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