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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北伐論의 추이와 北學論의 대두 (Unfolding of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in 17·18th century, and Emergence of 'Bukhak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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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22 최종저작일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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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北伐論의 추이와 北學論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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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수록지 정보 : 대동문화연구 / 69호 / 373 ~ 418페이지
    · 저자명 : 허태용

    초록

    이 논문은 18세기 후반 북학론의 등장을 17세기 후반 이래 한 세기 넘게 다양한 양상으로 지속된 북벌론의 전개 과정 속에서 살펴본 글이다. 이는 북학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논리를 보다 긴 호흡의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살펴보기 위함이다. 17세기 후반 효종이 사망하고 南明이 멸망하면서부터 퇴조하기 시작하던 북벌론은 三藩의 亂이 진압된 것을 계기로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거의 포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북벌론은 다양한 역사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18세기에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18세기 전반의 북벌론은 대개 재야의 산림적 인물들에 의해서 꾸준하게 강조되었다. 조정의 관료들은 대부분 북벌론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자는 입장이었던 반면에 이들은 근본적인 입장에서의 북벌론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 속에서조차 북벌론은 다른 붕당을 공격하고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한 논리의 외피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다른 한편 이 시기에는 보다 명확하게 북벌론의 폐기를 주장하는 인물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청과 조선의 관계를 군신의 관계로 보려던 시각도 등장하였으며 복수의 의리를 계속 견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들도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된 시각의 등장은 청나라에 대한 일부 긍정적인 평가로도 이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청나라의 중국 지배가 백년이 넘어간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극소수의인물을 제외하면 조정의 관료나 재야의 인물들 모두 모두 북벌론의 비현실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인물들은 북벌론의 의미와 효종의 정신을 기념하면서 북벌론을 역사화하고 있었다. 결국 이 시기에는 북벌론에 대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전대에 비해 점점 더 확산되고 있었다.
    이제 조선의 지배층 인물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청나라의 몰락을 기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청나라가 오래도록 번성하고 있는 이유를 찾아서 설명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조선 지배층들이 전통적인 화이관을 완벽하게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이유를 이적성, 즉 청나라의 고유한 근본적인 속성으로부터 도출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청나라가 중화의 문물을 빼앗아서 의지하고 있다는 논리를 만들어 내었다. 즉 ‘이적’인 청나라 자체와 ‘중화의 남은 문물’인 청나라의 문물을 구분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명나라의 멸망은 청나라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필요성은 더욱 약화되었다. 청나라의 문물이 사실상 중화의 남은 문물이기 때문에 도입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북학론은 소수의 인물들에 의해서 18세기 후반에 돌출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17세기 후반 이래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도출될 수 있었다고 보인다.

    영어초록

    This Article is intended to explain the emergence of 'Bukhak Thoughts'(Northern learning, 北學) in late 18th century was the result of succession and variation of long term continued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since late 17th century. King and cabinet of court of Joseon dynasty began to admitted that they did not persist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fter the failure of the Revolt of the Three Feudatories in 1681.
    but some distinguished figures out of court such as Han won-jin continuously asserted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in early 18th century, whereas most of figures in court thought that more important was not persisit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but to commemorate historical meaning of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On the other hand, few figures began to asserted to abolish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nd admitted the Qing centered east asian world order instead of Ming centered east asian world order.
    By the way, since the middle of 18th century that had passed a century after collapse of Ming Dynasty, it was even harder to continue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The reality that the barbarian Qing continued to occupy china more than a century was enough for them to give up for the hope to recover Ming Dynasty at last. This changed situation made most ruling class people of Joseon dynasty including some distinguished figures out of court, except few men, abandon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completely, and made most ruling class people of Joseon dynasty find the reason why Qing could lasted over a century despite their barbarian attribute.
    In this context, some figures who had been visited peking as a member of official envoy of Joseon, began to explain the reason of Qing dynasty's stability and prosperity was not because of Barabrian Qing attribute, but because of Chinese traditional culture which Barabrian Qing stole from Chinese Ming dynasty. Some ruling class figures of Joseon dynasty such as Bak Jega, Bak Jiwon began to separate culture of Qing and Qing itself, and they did not felt any difficult to accept culture of Qing because it was not Barbarian Qing's but Chinese. Bukhak Thoughts could be originated from this concept.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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