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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행주론(行舟論)’의 전개와 운주사 (Development of Dosun’s Haengju Theory and Woonju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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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22 최종저작일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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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행주론(行舟論)’의 전개와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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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 수록지 정보 : 호남학 / 58호 / 187 ~ 217페이지
    · 저자명 : 박미선

    초록

    전남 화순 도암면 대초리에 위치한 운주사는 도선이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 운주사 창건은 빨라도 11세기 경의 일이고 도선은 9세기 인물로, 17세기 후반 조선후기의 설화가 역구전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운주사의 창건에 대한 최초의 설명으로 운주사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폐사를 겪었던 운주사가 현존할 수 있게 된 배경을 도선의 행주론을 통해 검토하였다.
    도선의 풍수비보는 산천을 특정 형세로 비유하고, 풍수적으로 결함이 있어 길지가 아닌 땅은 사찰, 탑, 불상, 당간을 설치하여 고쳐 쓰고, 부족한 부분은 더하거나 북돋아 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도선의 풍수비보는 고려 건국과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되어 고려시대에는 대부분의 사찰이 이에 의거하여 창건되었다. 하지만 고려말 공양왕대 비보사찰의 의미가 약화되고, 조선건국 후 숭유억불정책의 일환으로 불교의 교세가 약화되던 중 정유재란이 발생하면서 운주사는 폐사되었다.
    하지만 폐사 이후에도 운주사는 면면히 그 맥을 유지해 나갔다. 운주사의 중요성은 ‘호국’의 이념이 잠재되어 있었다. 조선후기 불교교단의 자기 정체성 찾기의 일환에서 고승비문이 찬술되었는데, 도선의 비문 역시 이때에 찬술되면서 운주사의 창건이 행주형국의 지세를 비보하기 위함이라고 설명되었다. 이러한 행주론은 17세기 전쟁, 북벌정책, 경신대기근 등 국내외 위기 상황에서 ‘호국’의 맥락으로 수용되기 용이한 것이었다. 19세기에는 행주론에 대한 인식이 주변 사찰의 승려들과 관청에 의해서 공유되면서 약사전의 창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국가적 지원이 없고, 승려 개인의 적극적 활동이 사라지면서 다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 운주사는 다시 부활하게 된다. 이전의 ‘호국’의 측면에서 운주사의 유래를 설명한 행주론은 신비하고 신이한 창건 방법에 대한 다양한 설화가 덧붙여지게 되었다. ‘호국’ 자체보다는 현존하는 신비한 천불천탑의 창건 방법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는 당시 관광객의 유입과 수요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일제는 문화유적 조사와 공휴일 지정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관광객의 증가로 이어졌는데, 명승지로서 운주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위해 ‘행주론’이 향유층을 겨냥하여 흥미로운 사실들을 첨입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조선의 산천 형세를 통해 조선 민족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영어초록

    Temple Woonjusa located in Daecho-ri, Doam-myon, Hwasun, Chonnam district has been said to be founded by Dosun. But, actually Woonjusa was built in the 11th century at the earliest and Dosun lived in the 9th century, which means that such a tale in the 17C late Chosun was re-handed down. In spite of the fact, the story helps us understand the identity of Woonjusa with the first description of foundation of Woonjusa. This study reviewed how Woonjusa which had been almost ruined has still existed through Dosun’s Haengju Theory.
    According to Dosun’s Feng-shui Bibo, nature such as mountains and streams is a metaphor of a specific land topography, and when a specific site is not good with a defect in terms of Feng-shui, it should be repaired by building a temple, pagoda, statue of Buddha, or Dangkan in order to make up for the lack. Such Dosun’s Feng-shui Bibo was used at a national level with founding Goryeo dynasty and most temples were built based on the theory. But, the meaning of Bibo temple was weakened in the period of King Kongyang’s reign in late Goryeo, and the power of Buddhism got weakened under the policy of Worshipping Confucian-Suppressing Buddhism in Chosun dynasty. To make it worse, Jeongyujaeran (Japanese invasion in 1592) broke out in the middle of the process and Woonjusa was almost ruined.
    In spite of the ruin, Woonjusa managed to survive. What is important is Woonjusa contains the ideology of ‘patriotic spirit’. In late Chosun, epitaphs of eminent monks were compiled in a way to find the identity of Buddhism order. During the process, they compiled Dosun’s epitaph which showed the description that Woonjusa was founded for Bibo because of its geographical feature of a sailing boat. Haengju Theory was easy to accept as a context of ‘patriotic spirit’ in the period of a national or international crisis such as the 17th war, the enlargement policy towards the North, KyeongShin Great Famine. etc. In the 19th century, the perception of Haengju Theory was shared among monks in neighborhood temples and government offices, which led to building Yaksajeon. But unfortunately that got out of interest as there were no national support and individual activities among monks.
    Woonjusa was beginning to revive in the 20th century, with added tales related to a mysterious way of building the temple to Haengju Theory which described the background of building Woonjusa in terms of existing ‘patriotic spirit’. The tales were about a way of building mysterious Chunbul-Chuntops they could see rather than invisible ‘patriotic spirit’. It seems to have been related to inflow of tourists and income. Japan in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enforced a policy to research Korean cultural heritage or sites and holiday designation. Such a policy led to increase of tourists, and there added an interesting story to Haengju Theory in the process for readers to attract their interest in Woonjusa as an attraction.
    As above said, Dosun’s Haengju Theory is not an answer to who built Woonjusa, but a review on how Dosun’s Haengju Theory has been changed and still existed.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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