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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기 동근동조론(同根同祖論)의 대두와 내선일체론의 균열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s Policy of “Naeseon Ilche” and “Donggeundongjo-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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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22 최종저작일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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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기 동근동조론(同根同祖論)의 대두와 내선일체론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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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수록지 정보 : 인문과학 / 54호 / 87 ~ 122페이지
    · 저자명 : 장신

    초록

    1937년 미나미 총독이 부임하여, 1938년 조선교육령이 개정됨과 함께 황국신민화정책이 추진되면서그 핵심 과제로 내선일체가 부각되었다. 내선일체를 추진할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는 가운데 동근동조론은 역사적으로 내선일체를 뒷받침하는 논리로 부각되었다. 동근동조를 주장한 학자나 관료가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조선총독부가 적극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내선일체 이전에 내선융화를 표방하던 때는 일본민족과 조선민족의 다름을인정하고 두 민족이 일본국가의 일본국민으로 공존할 것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내선일체는 전쟁동원을 위해 두 민족의 혈연적 친연성을 강조하였다.
    기존의 조선총독부 관료들과 달리 동근동조를 주장한 사람은 미나미총독과 그의 심복인 시오바라 학무국장, 그리고 미나미의 뒤를 이은 고이소 총독이었다. 시오바라 국장은 노조에 교수의 츠라니즘을 수용하여 일본과 조선을 같은 퉁구스족이라 주장하였다. 시오바라는 이를 바탕으로먼 신대부터 일본과 조선이 기원을 같이 한다고 강변하였다. 고이소 총독은 고사기 에 근거해 일본 신대의 스사노오노미코토와 조선의 단군이같은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일본과 조선은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라고 하였다. 고이소 총독이 주장한 스사노오노미코토=단군설은 이미 조선총독부와 경성제대 등의 학계에서 배척된 일선동조론의 변종이었다. 이러한주장에 일본 국사학계와 경성제대 사학과는 신화를 역사로 혼동해서는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총독부 고위관료의 정치적 주장에 호응한 학계 인사는 가나자와 뿐이었다.
    조선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동근동조로 설명하려는 조선총독부의 시도는, 학계의 외면과 부정적인 조선여론에 막혀 쉽사리 원하는 결론을 얻지 못하였다. 1938년 9월에 열린 시국대책조사회의 자문답신안에서 동조동근이 수정되거나 삭제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총독부의 공식 입장이정해지지 않음에 따라 내선일체 추진의 관민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나 그 후속단체였던 국민총력조선연맹도 조선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언론과 교육계 일부에서는 총독의 뜻을 헤아려 일본과 조선의역사적 관계를 ‘내선일체의 역사’로 해석⋅선전하였다. 곧 신대부터 일본과 조선은 기원을 같이 했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스사노오노미코토 이래두 민족의 교류를 보여주는 수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내선일체를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로 소개되었다. 일제 말기에, 그리고 해방 직후에 비판과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동근동조론이었다. 그 어떤 학문적 근거를 가지 못했지만 전쟁동원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고 선전된 논리였다.
    한편 시오바라의 전임 즈음에 학무국 편수관이던 나카무라는 ‘내선일체의 역사’가 아닌 ‘내선일체가 될 역사’로서 조선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설명하고, 내선일체의 역사적 시작을 한국병합으로 보았다. 나카무라는 도쿄제대를 나온 일본사학자이자 조선사편수회 편수관이었다. 그 또한조선사를 타율적⋅정체적으로 보는 식민주의 사학자였지만, 신화와 역사를 구별하는 학자였다. 나카무라는 조선총독부 역사교과서의 담당 편수관으로서 1941년에 나온 6학년용 국사교과서에서 신화로 시작하던 기존 교과서 서술을 배제하고, 고고학 성과를 역사의 서두에 배치한 교과서 편찬을 지휘하였다. 기존의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이 교과서에도 동근동조를연상케 하는 서술은 없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고이소 총독의 압력으로개정된 교과서에는 다시 신화로 일본사를 시작하였다.

    영어초록

    This paper has examined the relations between the JapaneseGovernment-General’s two major policies of assimilation: “naeseon ilche” (內鮮一體) and “donggeundongjo-ron” (同根同祖論). The former idea maintains that“Japan and Korea are one entity,” while the latter, a.k.a. “ilseon-dongjo-ron”suggests an idea that the origin of ancient Japan and Joseon is the same.
    “Donggeundongjo-ron” emerged as one of the major measures of “naeseonilche” which was the core task the colonial policy of subjecting Joseon toJapan. Those who strongly suggested “donggeundongjo-ron” included: JapaneseGovernor-general Chiro Minami; Tokisaburo Shiobara, director of theEducational Affairs Bureau; and Governor-general Kuniaki Koiso. Professors ofKeijo Imperial University as well as Japan’s history circles, however, did notagree with the opinions. The Japanese academic community argued that mythshould not be interpreted as history.
    “Donggeundongjo-ron” was propagated into Joseon in two categories. First,the relation between Japan and Joseon in hisotry was interpreted andpublicized as “the history of ‘naeseon ilche.’” Since the era ofSusanoo-no-Mikoto —the Shinto god of the sea and storms — a lot of people or events have been introduced as historical evidences of “naeseon ilche.”Such a proposal was distributed through the bulletins published by the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Second, Japan reinterpreted thehistorical relations between Joseon and Japan not as “the history of ‘naeseonilche’” but as “the history that will become ‘naeseon ilche,’” thus regardingits occupation of Joseon as the historical beginning of “naeseon ilche.” Such aview was raised by the Educational Affairs Bureau in charge of publishinghistory textbooks and received a far-reaching response from the Japanesebureaucracy.
    Although “donggeundongjo-ron” failed to receive favorable responses fromboth the Japanese academic circles an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it,nevertheless, was distributed through the press and the educational fieldsunder the oppression from the governor-generals who had the distorted viewsof history. As “donggeundongjo-ron” was a fabricated history based onbeliefs, however, it failed to persuade the people of Joseon. With the defeatof Japan at the end of World War II, “donggeundongjo-ron,” along with“naeseon ilche,” disappeared like a mirage.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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