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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기독교 여성의 삶과 여성교육운동 - 여메례를 중심으로 - (Christian Women’s Life and Movements for the Education of Women in the Late Yi Dynasty: Focused on Yeo Me-r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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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20 최종저작일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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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기독교 여성의 삶과 여성교육운동 - 여메례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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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여성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여성과 역사 / 11호 / 167 ~ 201페이지
    · 저자명 : 윤정란

    초록

    본고에서는 구한말 미국의 여선교사를 통해 근대여성으로 성장한 후 여성지도자로서 활동했던 여메례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일제강점기 잊혀 진 인물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파악하고자 하였다. 여메례는 12세 이후에 부모와 떨어져 외국 여선교사들과 함께 지냈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여선교사들의 삶의 방식, 간호학에 대한 기초지식 등을 배움으로써 근대적인 여성으로서 성장하였다. 이후 그가 여성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엡윗청년회 활동이었다. 청년회 활동은 기독교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토대로 자신이 직접 여자청년회를 조직하고 활성화하였다. 성실함, 포용력, 교제력 등을 갖추어야만 여메례처럼 여성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직접 조직을 만들고 지도했던 여메례는 을사늑약 이후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는 여성들도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급해진 여메례는 일본 시찰을 통해 여성교육의 현장을 둘러보고 한국에서도 여성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정부에서도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여아들을 모아 놓고 가르쳤다.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황실에서 여메례를 불렀다.
    진명여학교를 설립한 후 총교사로 활동하면서 그는 서북지역을 돌아다니며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 결과 평양에도 진명여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더 이상 그는 여성교육운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여성지도자로 성장한 여메례가 일제강점기 다른 여성지도자들과 함께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은 1907년 이후 친일여성들과 교류를 하면서 애국지사들과 더 이상 교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일제에게 강점되고 엄귀비가 세상을 떠나면서 여메례는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에서 조차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그가 가야할 곳은 없었다. 과거 그가 활동했던 곳은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찾았던 것이 다른 교파의 기독교였다. 반면에 조신성은 평양진명여학교의 교장을 그만 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평양의 애국지사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조신성은 이후 근우회의 집행위원장으로서 한국 여성운동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메례는 진명여학교라는 틀에 갇혀서 일제에게 협력하는 동안 더 이상 한국 여성지도자로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인은 결국 여성지도자로서 일제 침략에 대한 자신의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study purposed to examine how Yeo Me-rye, who had grown into a modern woman by American women missionaries in the late Yi Dynasty and acted as a woman leader, was forgotten through the period under Japanese imperialism. Yeo Me-rye parted from her parents at the age of 12 and lived together with foreign women missionaries. In this environment, she learned women missionaries’ lifestyle, basic knowledge of nursing, etc. and grew into a modern woman. What transformed her into a woman leader were her activities at the Epworth League. In her activities as a member of the league, she took interest not only in Christian issues but also in general social problems. Based on these activities, she organized the Young Women’s Association and activated it. Only one equipped with sincerity, broad mind, and sociability could be a woman leader like Yeo Me-rye. After the 1905 Protectorate Treaty, Yeo Me-rye, who initiated and led organizations by herself, maintained that women should also participate actively in works for the safety of the country. Driven by this idea, Yeo Me-rye visited sites for the education of women in Japan and came to believe that Korea also should establish institutions for the education of women. Because the government was passive in this matter, she gathered girls and taught them by herself. When she was preparing for the education of women in this way, the Imperial government called Yeo Me-rye.
    She founded Jinmyeong Girls’ School and worked as a general teacher of the school, and at the same time, she travelled around the western region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education of women. As a result, she could found Jinmyeong Girls’ School in Pyeongyang. With colonization by Japan in 1910, however, she could not continue her movement for the education of women.
    The reason that Yeo Me-rye, who had grown into a woman leader, could not work together with other women leaders during the period under Japanese imperialism was that her relation with patriotic leaders was disconnected due to her association with pro-Japanese women from 1907. As Korea was occupied by Japan and her sponsor Princess Eeom passed away, she was on the verge of losing ground for her activities. She did not have any place to go. She could not return where she had worked in the past. The last resort that she found was the Christianity of another denomination. On the contrary, Jo Shin-seong, even after she resigned as the principal of Pyeongyang Jinmyeong Girls’ School, continued to expand the area of her activities through associating with patriotic leaders in Pyeongyang. Jo Shin-seong could become a leader of Korean women’s movements as the chairwomen of the Executive Committee of Keunwoo-hoi. However, Yeo Me-rye was not recognized as a Korean woman leader because she was confined in the frame of Jinmyeong Girls’ School and cooperated with Japanese imperialism. This suggests that she lacked self-reflection on Japanese imperialism as a woman leader.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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