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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明宗代의 求言과 民本理念의 변질 (‘Gu-Eon(求言)’ and the Decline of ‘Min-Bon(民本)’ Ideology during the Reign of Myung Jong(明宗) of the Chosun Dynasty)

4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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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28 최종저작일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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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明宗代의 求言과 民本理念의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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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조선시대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조선시대사학보 / 51호 / 89 ~ 134페이지
    · 저자명 : 이석규

    초록

    본 논문은 조선 명종대에 행해진 구언 제도를 통해 이 시기에 민본이념이 변질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명종대에는 한재와 여역이 극심하였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언은 거의 행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왕의 안위와 관련된 재이가 발생하였을 때 구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재이가 더이상 군주의 민본정치를 강제하는 수단이 되지 못할 정도로 당시의 지배층은 민생의 안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민생에 대한 외면은 진휼정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집권 훈척세력은 진휼의 책임을 수령에게 맡기자는 입장이었지만, 진휼에 소홀한 수령을 적간하는 것에는 적극 반대하였다. 민이 굶주리는 것은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라거나 또는 민이 게으른 탓이라고 하면서 수령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수령과 구조적으로 결탁된 공생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한편 사림계 관료들에게도 민본정치는 적극적인 관심사가 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원론적이고 추상적 덕목인 군주의 ‘正心’만을 강조할 뿐, 그것이 어떻게 현실 정치에서 구체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경세의식은 부족하였다.
    민본정치가 행해지지 않자 민은 상당히 격렬하게 대응하였다. 전국적으로 발생한 도적들은 무리를 이루어 종친을 잡아가고 사족을 죽이며 지방관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도적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은 정소, 상언, 격쟁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실로 당시의 민은 지배층의 침탈에 대책없이 당하기만 하는 존재는 분명 아니었다.
    주목되는 것은 이같은 민의 대응을 즉자적 반응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가 민본정치를 행하는지의 여부가 지방의 가장 천한 민에게까지 인식되고 있었고, 이에 바탕하여 국가에 진휼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국가의 진휼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자각은 곧 유교 정치사상에서 지배층이 민을 위한 정치를 행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종래 天을 매개로 해서만 자신의 요구를 표현할 수 있었던 민이 이제는 어떤 매개물에도 의존하지 않고 직접 스스로의 ‘권리’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 점에서 16세기의 민은 분명 한 단계 성장하고 있었고, 이전 시기의 민과는 구별되는 존재였다.

    영어초록

    The purpose of this article lies in pointing out the decline of 'Min-Bon(民本)' ideology during the reign of Myung Jong(明宗) by shedding a light on the institution of 'Gu-Eon(求言)' operating at that time. In spite of the plagues and droughts afflicting the common people, 'Gu-Eon' was usually put into practice in the cases of the king's calamity. This meant that calamity now ceased to work as a means to enforce the monarch to carry out 'Min-Bon' policies and that the ruling classes did not pay proper attention to the life of the common people.
    The commoners reacted in a fierce fashion. Brigands were rampant across the nation. Many commoners were desperate in keeping their interests by doing 'Jeong-So(呈訴)', 'Sang-Eon(上言)', and 'Gyeok-Chaeng(擊錚)'. They were not those who passively suffered from the exploitation of the ruling classes.
    What draws our attention is the fact that the common people's reaction derived in part from the recognition of their own rights. Even the lowest classes were concerned about the nature of 'Min-Bon' policies and frequently asked government's help when it was necessary. The Confucian political idea that the ruling had a duty to work for the ruled spread into the low spectrum of the contemporary society. The commoners, who had so far expressed their demands only through 'Cheon(天)' now asked for their own rights directly. In this respect, the common people in the sixteenth century were taking a progressive step and were different from their predecessor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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