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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남양청의 조선인 노무자 동원과 귀환 (Mobilization and Return of Korean Workers for the South Seas government in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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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28 최종저작일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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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남양청의 조선인 노무자 동원과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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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76호 / 121 ~ 162페이지
    · 저자명 : 김명환

    초록

    이글에서는 1944년도 남양청에 의해 남양군도 팔라우로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들의 피해실태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1944년 당시 남양청은 500명의 조선인 노무자들을 모집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는 사망자를 포함하여 334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동원 당시 각 군에서 송출된 인원은 455명이었다는 점에서 동원과정에서 노무자들의 탈출이 빈번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팔라우에 도착한 노무자는 각 반별로 육군, 해군, 남양청 등에 배정되었다. 원래 노무자들은 남양청 직영공사장에 배치할 목적으로 동원하였으나, 현지사정으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원 노무자 334명 중 최종적으로 15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중 27명은 팔라우로의 수송 도중 선박침몰로 인하여 사망하였다. 1명은 선박 침몰 이전에 사망하였고 나머지 123명은 팔라우 상륙 후 사망하였다.
    노무자들의 사망이유는 전사, 전병사, 공상사, 해몰(海歿) 등으로 다양하다. 이 시기 노무자들의 사망은 작업 중 사고사인 경우보다는 미군공격에 의한 사망이거나, 식량부족에 따른 영양상태 불량으로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확인된다.
    사망기록을 검토해보면 대부분의 노무자들은 코로르(Koror) 지역에 배치되었다가 팔라우본도(Babeldaob)로 이동하여 육군 제14사단의 관리 하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부 노무자들은 아이라이(Airai) 소재 해군에 배치되었다가 해군 제30건설부에 현지채용된 후 펠렐리우(Peleliu)로 이동하였고 잔여인원은 팔라우본도 중부로 옮겨간 것으로 확인된다.
    해방 후 조선인들은 사실상 방치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러자 조선인들은 남양청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였고, 비로소 남양청은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남양청이 취한 조치 중 주목할만한 것은 노무자의 신분취급에 관한 것이다. 즉 군(軍)에 供用 중 전사, 전상사, 전상을 당한 경우 군속으로 취급하여 군에서 일체를 담임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전장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진 노무지의 군속화와 관련된 조치로 이해된다.
    해방 당시 1944년도 동원 노무자 중 사망자를 제외한 인원은 183명이다. 이들 중 170명은 자료에서 귀환사실이 확인된다. 나머지 13명은 아무런 기록이 없어 귀국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영어초록

    This study aimed to examine damages caused by mobilization of Korean workers to the Palau in the South Sea Islands by the South Seas government in 1944.
    In 1944, the South Seas government intended to call 500 Korean workers. However, it only mobilized 334 workers, including those who died. Considering the fact that 455 workers were sent from different guns, it can be inferred that many workers escaped during the mobilization process.
    Workers who arrived at Palau were sent to join the army or naval forces by the South Seas government. The original plan was to place them at construction sites run directly by the South Seas government, but the plan seems to have changed because of local conditions.
    It is confirmed that 151 of the 334 workers died. 27 of these people died on a ship that sunk on the way to Palau. 1 person died before the ship sank, and 123 died after the ship landed on Palau.
    There were various reasons for the deaths of the workers, including death during battle, death through a disease, death from an accident and death from falling overboard. Most of the deaths of workers during this period are confirmed to have been due to attack by US forces or bad nutrition from lack of food rather than accidents while working.
    The death records show that most of the workers were dispatched to Koror and then moved to Babeldaob and was managed in the 14th army unit. Some workers were dispatched to the navy in Airai and then employed by the 30th naval construction department. They then moved to Peleliu, and the remaining people moved to central Palau.
    Koreans were actually neglected after liberation. The Koreans therefore presented strong complaints against the South Seas government, and the government eventually paid them their delayed wages.
    One measurement of the South Seas government that is a point of focus, is how it handled the identity of workers. Those who died during battle, died of wounds received in action and got wounded during action were handled as members of the military so the military would have to take care of them. This can be understood as a measure to attach workers to the military, which was adopted widely in the battlefield at that time.
    There were 183 survivors out of the workers mobilized in 1944, during liberation. Records show that 170 of these survivors returned home. There are no records of the remaining 13 people, making it impossible to confirm whether or not they returned.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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