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近代 孔夫子聖蹟圖 연구:車圭範 간행 -『孔夫子聖蹟圖』를 중심으로- (The Study of the Holy Traces of Confucius(孔夫子聖蹟圖) printed by Cha KyuBeom(車圭範))

40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3.21 최종저작일 2024.08
40P 미리보기
近代 孔夫子聖蹟圖 연구:車圭範 간행 -『孔夫子聖蹟圖』를 중심으로-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 수록지 정보 : 南冥學硏究 / 81호 / 323 ~ 362페이지
    · 저자명 : 조정육

    초록

    孔子聖蹟圖는 중국에서 元代의 王振鵬(14세기)에 의해 처음 선보인 이후 明淸代를 거쳐 여러 판본이 제작되었다. 중국의 공자성적도는 1539년에 조선에 처음 유입되었고 근대까지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車圭範이 1924년에 간행한 『孔夫子聖蹟圖』(이하 차규범본)는 ‘題와 讚’형식으로 孔在憲의 『孔夫子聖蹟圖』(1905, 이하 공재헌본)를 模本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간행인물과 간행처를 나타낼 때는 ‘판’을 쓰고, 소장인물이나 소장처를 나타낼 때는 ‘본’을 쓰지만 본 논문에서는 모두 ‘본’으로 통일하였다. 이것은 전주감영에서 판각한 책판으로 만든 책을 ‘완영본’이라고 지칭하는 사례처럼 ‘본’과 ‘판’을 섞어서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차규범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각 대학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판본으로 단일판본으로는 그 수량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전체 그림은 105圖이며 그 순서나 제와 찬의 구성이 공재헌본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공재헌본이 가로가 길고 한 작품이 양면에 걸쳐 인쇄된 반면, 차규범본은 세로가 길고 한 작품이 한 면에 인쇄되어 휴대하기 편한 책으로 바뀌었다. 공재헌본은 양면을 펼쳐야 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전통적인 화첩의 형식이고 차규범본은 한 면에 한 그림이 들어가는 책의 형식이다. 이것은 공재헌본과 차규범본이 제작목적과 의도에서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공재헌본은 공자의 생애를 최대한 예술성이 돋보이게 제작하여 유교의 시조인 공자를 현양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반면 차규범본은 예술성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공자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다. 즉 공재헌본이 유학을 공부하거나 실천하는 한정된 인원들을 독자로 삼았다면 차규범본은 유학을 모르거나 이해도가 떨어진 사람 혹은 이제 막 유학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공자에 대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교육용 교재로 제작하였다. 이것은 당시 기독교같은 외래 종교가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교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반성 위에서 차규범본같은 판형이 탄생하였음을 의미한다.
    대중화작업의 일환으로 공자성적도를 활용하려는 차규범본의 아이디어는 安敎煥이 1937년에 제작한 『聖蹟眞像圖』(이하 안교환본)의 마중물역할을 하였다. 안교환은 한문으로만 적힌 차규범본의 ‘제와 찬’형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글로 된 안내문을 옆면에 첨부함으로써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공자의 성적을 알리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피력하였다. 차규범본은 왕실이나 재력가 등 특별한 후원이 없는 상태에서 발행된 듯 그림 수준은 치졸하고 예술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공재헌본을 모본으로 하면서 공재헌본에 누락된 제시나 그림을 당시 중국에서 판각된 다른 판본을 참조하여 보충하는 등 공자의 생애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1920-30년대에는 현란할 정도로 화려한 잡지와 매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예술성이 떨어지고 단색으로 제작된 차규범본이 독자들(혹은 교육생들)에게 공자라는 인물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전달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결과는 대중화작업에서 이미지의 효과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발견된 현상이라고 하겠다. 또한 조선시대에 제작된 공자성적도가 왕실이나 관의 후원을 받아 수준높은 필력을 지닌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반면 차규범본은 오로지 유림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제작할 수 밖에 없었던 경제적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차규범본은 이 책을 제작한 당시 유림들의 재정상황뿐만 아니라 유교의 위상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본 논문에서는 차규범본에 대한 내용을 제찬과 판형 그리고 구체적인 작품분석을 통해 공자교육의 대중화를 위해 효시역할을 한 작품의 내용과 의의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영어초록

    The Holy Traces of Confucius(孔夫子聖蹟圖) was first made by Wang Zhenpeng(王振鵬) of Yuan Dynasty in 14th century and several types of woodblock-printed books had been printed through Ming and Qing Dynasty in China. Chinese Holy Traces of Confucius(孔夫子聖蹟圖) was first introduced into Joseon Dynasty in 1539 and it was published continuously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Cha KyuBeom(車圭範) printed the Holy Traces of Confucius(孔夫子聖蹟圖) on his own in 1924 using Kong Jaeheon(孔在憲)’s version which was produced in 1905.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is the most printed woodblock-printed book that is easily found in National Library of Korea as well as in each university library. It is consisted of 105 piece of pictures and it’s almost the same as Kong Jaeheon(孔在憲)’s version in terms of table of contents along with compositions of titles(題) and explanations(讚). Kong Jaeheon(孔在憲)’s version is long in width and printed in both sides while Cha KyuBeom(車圭範)’s is long in length and each picture is printed in one side so easy to carry on.
    Kong Jaeheon(孔在憲)’s version is so conventional woodblock-printed book that is need to be unfold both sides to understand picture while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is one picture in single page. This indicates there are great differences between Kong Jaeheon(孔在憲)’s version and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as for production objective and purpose. Kong Jaeheon(孔在憲) made the woodblock-printed book stand out artistically to adore Confucius(孔子) who found Confucianism. But Cha KyuBeom(車圭範)’ production intention was to let the public know Confucius(孔子) accurately although its artistic value might be debased.
    Kong Jaeheon(孔在憲) intended to win over readers of Confucian scholars and the educated in society while Cha KyuBeom(車圭範) made it as training materials for those who have no knowledge of or someone just starting to learn Confucianism.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was made reflecting on the popularization of Confucianism to restore Korean national spirit in Japanese colonial era of early 20th century when foreign religions like Christianity come in like a tide.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was inspired by Ahn GyoHwan(安敎煥) who painted True Portraits of the Holy Traces(聖蹟眞像圖) in 1937. Ahn GyoHwan(安敎煥) adds notices in Hangeul, Korean alphabet aside with Chinese character for those illiterate hoping to learn Confucius and Confucian thought. It seems like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was produced without financial supports from either Royal family of Choseon Dynasty or men of wealth since the quality of picutres are shoddy and no artistic value can be found.
    But it is found that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started from Kong Jaeheon(孔在憲)’s but he improves the production a lot by supplementing titles, explanations and pictures which were omitted from Kong Jaeheon(孔在憲)’s version refering to chinese woodblock-printed book at the time. The fact implies that Cha KyuBeom(車圭範) made his best efforts to tell Confucius’s life to the public accurately. It’s doubtful whether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which has no artistic value, only made with single color would educate readers in the 1920’s and 1930’s when colorful magazines and fancy media prevailed.
    The results comes from the lack of understanding that image effects always overwhelm in the popularizing process. Since all the Holy Traces of Confucius(孔夫子聖蹟圖) produced in Choseon Dynasty received supports from either royal families or the authorities, renowned painter participated in the production therefore high-quality pictures could be born. But Cha KyuBeom(車圭範)’s version was made only with the help of each and every Confucian scholars, you can’t expect shiny pictures and books. In a sense, the Holy Traces of Confucius(孔夫子聖蹟圖) made by Cha KyuBeom(車圭範) indicates the financial conditions of Confucian scholars and the status of Confucianism at the moment when it was produced.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南冥學硏究”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09월 17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34 오후